「5공」은 국민 투표로 끝내자|이상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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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은 정치적 흥정거리가 아니다.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역사」다. 한두 명 특정 정치인의 공직사퇴로, 그리고 전직 정치 지도자의 증언 정도로 마무리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 국민의 뜻을 물어 잘잘못을 밝힌 후 역사 속에 묻어야 할 대상이다.「5공」 은 단순한 화풀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보복의 반복은 결코 생산적이 되지 못한다. 이 사회에 미움만 쌓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미래 창조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앞날의 바른 기틀을 잡기 위해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꼭 버려야할 5공3악>
이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용서될 수 없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다짐하자는 것이 역사 정리의 목적이다.
정리 안된 역사는 두고두고 사회에 부담을 준다. 건국 초기에 일제 35년의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 함으로써 입은 손실은 얼마나 컸던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이 남아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 금이 가게 해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2차 세계대전이후 전승국들은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을 준엄하게 다스렸다.
그 개개인들이 미워서 그랬었겠는가. 다시는 나치스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가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선명하게 선언해 두자는 뜻에서 인류의 양심을 걸고 역사를 정리했던 것뿐이다. 「5공 청산」 도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청산돼야할 5공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5공 출현의 불법성, 권력남용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그리고 부정과 비리 등이다. 5공 청산을 통하여 정립하려는 역사적 교훈은 한마디로 정치권력의 정통성과 도덕성 존중이다. 정통성을 잃은 정치권력, 도덕성을 잃은 통치 행위는 국민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의 정치흐름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5공은「12·12」라 부르는 쿠데타를 통해 출현했다. 합법성을 가장한 불법적 정권탈취였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5공의 정통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군사 쿠데타는 우리정치에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고 그래서 5공 출현 과정에서 불법을 감행한 책임자의 죄를 물어 우리 정치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5공 청산을 요구하는 이유가 되고있다.
5공의 주역들은 국민들이 위임하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 국민들을 괴롭혔다. 특히 법과 제도를 자의적으로 고치고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었다. 민주국가에서 정권 담당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권력남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해 두자는 것이 5공 청산 요구의 또 하나의 내용이다.
5공의 권력자들은 친인척을 앞세워 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 권력을 사용하여 국민의 분노를 샀었다. 이러한 권력외 부도덕성은 용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의 생각이고 그래서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 부정·비리를 밝혀 척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청산빙자 정치투쟁만>
5공 청산의 목적과 의의, 그리고 범위를 이상과 같이 이해한다면 오늘 우리의 정치인들이 펼치고 있는 5공 청산작업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나라일 모두 제쳐놓고 2년 동안 논의했다는 것이 고작 한두 명의 공직자 사퇴라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나마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정도의 하급 책임자를 골라 우격다짐으로 공직 사퇴를 강요하는 것으로 5공 청산을 마감한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더욱 국민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5공 청산의 목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여와 야가 거론하고 있는 5공 청산 내용은 역사의 정리라는 목적을 떠나 앞으로 있을 대권정책을 겨냥한 정적소탕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5공 청산을 빙자한 정치 투쟁이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5공청산은 아니다.
정치는 대도여야 한다. 잔재주가 정치로 착각되어서는 안된다. 5공 청산을 핑계삼은 분풀이나 비겁한 정쟁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5공 청산을 해치운다면 그 청산작업이 또 다시 청산 되어야할 비리의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정치는 감정이 아니다. 이성이다. 냉철하게 얻을 득과 잃을 손을 가늠하여 결단을 내려야 바른 정치다. 5공은 더 이상 끌어서 득이 될 것도 없으며 오히려 청산을 둘러싼 새로운 비리가 국민의 정치 불신만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이제 단안을 내려 5공 청산작업의 청산을 해야할 단계에 온 것 같다.
5공 청산은 국민투표로 마감하기를 제안한다. 정치로 해결 못할 전망이라면 주권자인 국민의 뜻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5공은 이제 여당이 몇 가지 조치를 취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으며 여야간에 흥정을 통해 서로 양해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냥 놓아 둘 수도 없다.

<5공 놀음에 신물난다>
5공 청산을 정쟁 수준의 싸움에서 미래설계의 기초 구축작업으로 승화시키려면 결국 국민의 뜻을 묻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5공과 관련하여 책임을 물어야할 사항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책임자의 공직을 제한 한다든가 하는 등 책임을 묻는 내용을 포함시켜 국민투표를 실시해 그것으로 5공 청산 작업을 마무리 지으면 어떨까. 5공의 궁극적 목적이 역사바로잡기이므로 이 정도의 포괄적 결단으로 족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들의 「5공 놀이」에 지쳤다. 5공도 청산해야겠지만 5공 청산을 앞세운 정치놀음도 하루 빨리 끝내기를 원하고 있다. 5공으로 마비된 정치를 정상화시켜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산적한 나라안팎의 과제들을 풀어 나가는데 전념하도록 하자. 역사정리는 미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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