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56> 이승엽 '방망이 손잡이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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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5년 4월 → 2006년 8월

야구방망이에 노브(knob)라는 부분이 있다. 아래 쪽에 동그랗게 만든 손잡이다. 초창기 야구방망이는 그저 막대기처럼 생겼다. 막대기를 휘두르면 손이 미끄러져 힘을 싣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끝을 동그랗게 깎아 손잡이를 만들었다. 노브의 발명으로 그립이 훨씬 편해졌고, 안정된 스윙을 할 수 있게 됐다.

노브를 처음 만든 주인공은 놀랍게도 베이브 루스다. 루스는 1919년 방망이 회사 루이빌 슬러거에 노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첫 번째 선수다. 1918년 11개의 홈런을 때렸던 루스는 그 방망이로 그해 29개를 때렸다. 야구 역사에 홈런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해다. 루스가 야구의 상징, 홈런의 상징이 된 것은 그가 고안한 새로운 모델의 방망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루스는 힘만 센, 배불뚝이 홈런왕이 아니라 타격의 기술을 연구하고 야구 장비에 새로운 장을 연 발명가였다.

방망이 손잡이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이승엽의 홈런이 이 노브의 재발견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서다. 이승엽의 방망이 그립을 유심히 보면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손잡이를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손잡이 윗부분을 잡는 게 아니고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잡고 휘두른다. 그런 그립을 사용하면 방망이가 내는 추(錘)의 효과가 더 커진다. 진자 운동이 활발해져 타구에 힘을 더 실을 수 있다. 그러나 방망이를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위험 부담이 있다.

이승엽은 "지난해 중반부터 그렇게 쳤다. 임팩트 순간에 힘을 더 쓸 수 있고 스윙 스피드도 더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반이면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한 뒤 홈런이 자주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승엽의 한국시절 사부 박흥식 삼성 타격코치는 "승엽이는 손목 힘이 워낙 좋아 그 그립의 장점을 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선수 프랑코가 삼성에서 뛴 2000년에 보고 배워 가끔 하긴 했는데 100%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타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그립보다 한 단계 위의 고급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엽은 또 "지난해에는 길이 33.75인치의 방망이를 썼는데 올해 34인치로 약간 긴 방망이를 쓰면서 일반적인 그립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손목 힘이 덜 들어가 다시 (노브를 감싸 잡는 그립으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방망이가 길어진 셈이다. 일반적인 그립으로 따지면 35인치 방망이와 같은 효과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바깥쪽 코스를 밀어쳐서도 쉽게 홈런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베이브 루스가 맨 방망이에 손잡이를 만들어 홈런을 펑펑 때려낸 것, 이승엽이 자신의 손목 힘을 충분히 활용하는 그립으로 아시아홈런왕의 위용을 되찾은 것. 이는 끝없이 연구하고, 작은 부분까지 파고드는 자세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진리의 재확인'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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