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풍경" 노점 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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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일 오후 9시쯤 서울 종로5가 의정부행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많은 시민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뜻밖의 장면에 분노를 터뜨려야 했다.
『노인네가 왠 힘이 이리 세.』
『좋은 말 할 때 빨리 가자구.』
정류장 앞에 리어카를 놓고 귤을 팔던 70대 할아버지에 대한 구청 철거반원들의 기습 「노점단속」.
『오죽 어려우면 늙은이가 이런 짓 하겠소. 좀 봐주소.』 추위에 곱은 주름진 손을 모아 빌던 백발노인은 변변히 반항조차 못한 채 곧 억센 팔들에 짐짝처럼 질길 끌려 트럭에 태워졌다.
입고 있던 낡은 점퍼가 강제로 얼굴에 뒤집어 씌워지고 지퍼까지 채워진 채….
이어 부근에서 군밤·오징어를 팔던 60대 할머니 노점상도 아들 뻘의 단속원들에 의해 거칠게 차에 실렸다.
『당신들은 부모도 없나. 세상에….』
무자비한 단속을 항의하고 나선 주변 시민들은 『너는 뭐야』 『이××들도 잡아가야겠다』며 함부로 내뱉는 이들의 욕설과 위세에 또 한 차례 분통을 삼켜야 했다.
20여 단속원들이 타고 온 트럭 3대에 나눠 타고 우르르 떠나자 남은 시민들은 『나쁜×들…』이라고 중얼거리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고 주인 잃은 리어카 두 대는 밤길에 방치됐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50m쯤 위쪽에는 여러 노점상들이 장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더욱 답답한 일은 잠시 후 항의전화를 한 시민에게 『그럴 리 없습니다. 오히려 단속반들이 당하고 다니는 현실을 왜 모르십니까』라고 반문하는 구청관계자의 천연스런 대답이었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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