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의식개혁이 절실하다(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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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 권위주의시대를 벗어나 민주화·자율화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기각해이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주위에서 겪고 있는 기강의 이완현상과 거기서 나오는 병리현상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다 보면 필요악으로 부수되는 일시적 이완현상이라고 보기에는 그 증상이 너무나 중증이다. 모두가 새로운 비판의 눈으로 자신을, 가정을, 이웃을,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되돌아 봐야된다. 그래서 얻는 새로운 현실인식과 충격이 기강을 바로잡는 첫 걸음이 되어야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형태의 사회적 병리현상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상 형태의 규모와 강도가 이제는 방관 만하고 있을 선을 훨씬 뛰어넘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현상을 바로 잡아야 된다.
물신숭배와 이기주의, 어린 학생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일말의 체면까지 던져 버린 채 벌이고 있는 몰가치의 상호 경쟁은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 온 사회공동체 의식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고 있다.
사회전반에 걸친 의식개혁 없이는 이 사회의 기강이 전면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의식개혁은 가정으로부터 출발돼야 한다. 입시준비 전담기관으로 전락해 버린 학교교육에서는 교육제도와 교육의 기본정신이 제자리를 되찾기 전에는 인간교육·인성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집단인 가정에서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융화와 기강을 세우는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근래의 사회혼란이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의 파도기적 현상으로 진단하고, 따라서 구성원의 훈련도 민주사회에 알맞도록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배양해 줘야 하겠다. 그러려면 부모의 의식부터 새로이 해야 한다.
우선 부모의 배타적이고 이기주의적 착각부터 고쳐야 한다. 남편이 가정 일에 세심한 것은 졸장부나 공처가가 하는 짓이라는 그릇된 호걸의식은 불식돼야 한다.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 일이 못난 짓이고 사회에서 낙오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미래사회를 살아갈 자기 자식의 훌륭한 시민적 자질과 품성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사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뜻 깊은 기여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가 먼저 질서와 사람을 수범하고 자식을 그 길로 인도해서 집단적 조화와 융합을 일찍부터 체질화시켜야 한다. 민주시민이란 가족이기주의를 사회와 국가의 건전한 발전에 접목시키는데서 그 역할이 정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삶의 규범과 기술을 훈련시킬 수 있는 조직이 가정 다음으로는 직장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 과정이란 가정과 학교, 직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이 혈연에 의한 기초적 집단이라면 직장은 자기선택에 의한 이익 공합체다. 선택을 바꾸기까지는 사용자와 근로자, 근로자와 근로자가 역량과 기술을 한데 모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접에서 확대된 가정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에도 질서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화합정신이 불가결의 요소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노사관계는 화합은 고사하고 갈등과 반목, 심지어는 적대관계로 반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의 체험을 되돌아보면 악화일 노로 치닫고 있는 경제의 여건은 노사가 공동이익을 향해 협력해도 극복이 될까 말까하는 격랑을 이루고 있다.
상호간에 승패의식을 버리고 서로가 승자일 수 있는 길은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길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개혁이나 혁명의 과정에서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개혁이전 상태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퇴보한 남의 나라의 예를 교훈으로 삼아야된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이미 그런 비극의 표본이 되었지만 우리의 이웃 필리핀이 지금 겪고 있는 거의 무정부상태와 길은 혼란도 우리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사회의 기강은 물론 1차 적으로는 정치의 책임이지만 변혁기에는 국민들의 성숙된 의식이 정치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앞에 산적해 있는 민주화 개혁으로의 어려운 길을 뚫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의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 기강을 다시 확립해야 된다. 이 작업은 우선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이루어져 사회전반으로 대하를 이루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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