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까지 해결한다더니 정부 당국자 한 번도 안 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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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도 사격장과 가장 가까운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의 모습. 고영곤 이장은 "주민들이 직도 쪽 어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 대해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12일 전북 군산시 여객선터미널은 온종일 인파로 붐볐다. 선유도.장자도 등 고군산군도를 찾아가는 휴가 행렬이다. "직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어딘지는 모르겠어요."(대학생 김세훈씨). 직도는 이들 섬을 지나 군산 앞바다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무인도다. 공군은 이곳을 폭격훈련장으로 쓰고 있다. 지난해 8월 매향리사격장이 폐쇄된 뒤 미국 측이 자동채점장비(WISS)가 설치된 대체 사격장을 요구하자 정부는 직도에 이 장비를 설치하는 공사를 올 10월께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수개월 내 훈련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 공군은 한반도를 떠나 훈련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한.미 동맹에 나쁜 징조이자 북한에 보내는 최악의 신호"라는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언급처럼 직도사격장은 한.미 동맹의 미래를 좌우할 사안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직도에서 가장 가까운 말도 주민들을 찾아가 봤다. 현지 분위기는 정부의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가득했다.

12일 군산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인 말도로 가는 훼리호에서 만난 고영곤(47) 말도 이장은 "지난해 미 공군부대에서 주민들을 초청해 피해를 줄여 보겠다고 설명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정부는 줄곧 우리 입만 막으려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민들은 직도에 미군이 사용할 장비를 설치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폭격이 이뤄질 것 같아 반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13가구 30여 명이 사는 자그마한 동네에 들어서자 박해열(61) 어촌계장은 자신의 집 화장실부터 보여 줬다. "폭격이 있을 때면 창문이 흔들리고 화장실 타일이 금이 가거나 떨어져 나간다고 몇 년 동안 공군부대 등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여기 와서 한번 살아봐야 우리 사정을 안다."

국방부는 WISS가 설치되면 연습탄을 쓰게 돼 오히려 소음이 줄고 어민들의 어로 구역도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 공군과 미 공군이 8 대 2의 비율로 쓰고 있는 사격량도 7 대 3 정도로만 조정될 것이라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고 이장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향리가 없어져 미군이 오는데 더 조용해질 리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 계장도 "직도하고 가까운 말도.명도.방축도에 7000만원씩 보상하고 어장 확보를 위한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얘기가 공군에서 나왔다는데, 그걸 받고 직도사격장을 공식화해 주면 아예 (폭탄을) 마구 쏟아 부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섬이 위치한 옥도면의 권태연 면장은 "주민들이 정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지 주민들을 전혀 접촉하지 않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직도에서 59㎞나 떨어진 군산의 경우 직도사격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이곳에서도 쏟아졌다. 11일 오후 군산시 중앙로 1가 '군산발전비상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린 직도사격장 반대 대책회의에선 "참여정부라는데 군사독재 정권에서나 하는 일을 한다" "두말할 것 없이 배 타고 직도에 상륙해 막는 수밖에 없고, 몇 사람이 죽어야 정부가 정신을 차릴 모양"이란 거친 말들이 오갔다. 이 협의회 이만수 의장은 "군산시민 12만177명의 반대 서명을 담은 민원을 지난달 10일 국무총리실에 냈지만 아무 답이 없다"며 "현지 공군부대 관계자만 왔다갔다 했지,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 한 명 내려온 적이 없다"고 했다. 최연성 군산대 교수도 "꼭 필요한 시설이면 주민을 설득해야 할 텐데 문제가 불거진 지 1년이 지나도록 아무 조치를 안 하다가 이제 와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한다"며 "제왕적 대통령도 아니고, 하라고만 하면 우리가 하는 사람들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직도사격장을 반대하는 이들의 속내도 제각각이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듯했다. 고영곤 이장은 "직도 쪽으로 가지 못해 본 어로 피해를 가구별로 현금 보상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말도와 명도, 방축도를 잇는 다리를 놔 달라고 하자는 얘기를 인근 섬 이장들과 나눴다"고 했다. 군산발전협의회 측은 "직도사격장을 방폐장처럼 국책사업으로 지정해 주민투표를 하라"며 "수천억원대의 지원책은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군산시 측은 "안보를 볼모로 할 생각은 없지만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지에서 직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직도는 매향리 대체지가 아니다"고 무마해 온 정부가 한.미 동맹 균열을 내세우는 미국 측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지역민심에 갇힌 채 시한에 쫓기는 신세가 된 셈이다.

군산.말도=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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