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베니스 수몰방지에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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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몰위기에 놓인 유럽관광의 최고 명소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아름다운「곤돌라의 도시」로 되살리자는 수몰방지 사업을 20여 년이나 미뤄온 이탈리아가 또다시 막대한 자금조달을 놓고 고민하고있다.
베니스란 영어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베네치아는 해수면의 상승과 지반 침하현상으로 인한 수몰위기 등으로 주민들이 속속 빠져나가 주인 없는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석호·모래의 퇴적 등으로 바다의 일부가 외해와 분리돼 만들어진 해안변의 호수)위에 흩어져있는 1백18개의 섬들이 4백여 개의 다리와 좁은 수로로 이어진 이 수상도시의 수몰위기가 알려진 것은 지난 66년11월4일부터다.
이때 베네치아에는 평균수위보다 2m나 더 높은 밀물이 갑자기 밀려들어와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됐다.
그후에도 1년에 40여 차례씩 산마르코 광장이 침수되는 등 이상 밀물 현상이 일어나 이 도시의 귀중한 문화재와 건축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왔다.
베네치아의 수몰현상은 아드리아해의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빙하가 녹아 내리는 자연현상 뿐 아니라 공업용수 등으로 지하수를 마구 퍼내는 인위적인 현상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베네치아 시는 금세기 초에 비해 25㎝정도 침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네치아의 최고 명소인 산마르코 광장의 해발높이가 64㎝, 그리고 베네치아시의 평균 해발높이가 1.1m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1m정도의 밀물이 밀려들기 만해도 시 전체가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베네치아 인구도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현재 인구는 50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만 여명. 관광사업 밖에 없는 이 지역의 경제침체와 주택부족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상승, 그리고 침수로 인한 생명위협 등으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정부는 베네치아를 살리기 위해 26억 달러(약2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수몰방지계획을 세웠으나 환경보호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시 당국이 각기 다른 자금조달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 수몰방지계획은 94년까지 베네치아 시를 구성하는 1백18개 석호와 아드리아해를 이어주는 세 곳에 밀물의 유입을 조절하는 대형 수문을 설치한다는 것.
이 계획을 위해 시 당국은 거액의 소요자금 중 절반은 정부가, 그 나머지는 시와 베네치아를 수몰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구성된「베네치아 누보아」(새로운 베네치아라는 뜻)라는 합자회사에서 조달한다는 것.
그러나 예산의 여유가 없는 이탈리아정부는 베네치아에「2000년 세계박람회」(엑스포2000)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이 공사에 필요한 자금도 끌어다 쓰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베네치아 시와 주민들은 문화재와 환경보호란 이유를 들어「박람회 유치 결사반대」로 맞서고 있어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베네치아를 살리려면 베네치아에 오지 말아달라』고 할 정도로 베네치아 시는 넘쳐흐르는 관광객으로 골치를 앓고있다. 이들이 버리고 간 오물 등으로 환경오염은 물론 문화재까지도 손상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시에서는 1년에 10여 차례 관광객 출입 봉쇄령까지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베네치아 대 경제연구팀은 평소 하루 평균 3만 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만 박람회를 열 경우 하루 평균 25만 여명이 방문, 1년 동안 최소 6천만명이 이 도시를 다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셀라티 시장은『박람회 유치가 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베네치아의 죽음」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라며, 베네치아가「디즈니랜드」가 아닌 「물의 도시」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세계인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각국에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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