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된 유진룡 전 차관이 청와대와 주고받았다는 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 한나라당, 정치 쟁점화=한나라당은 21일 개회하는 8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계획이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의 한나라당 정종복 의원은 10일 "청와대에서 밀어붙이려고 했던 아리랑TV 부사장, 한국영상자료원장의 인사를 유 전 차관이 거부해 청와대의 괘씸죄에 걸렸다는 의혹을 확인 중이다"며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8월 임시국회와 국정감사에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배를 째 드리지요" 위협설=유 전 차관의 경질 의혹이 보도된 10일 문화부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특히 유 전 차관이 아리랑TV의 부사장 자리에 청와대 측이 청탁한 정치인 출신의 모 인사를 거부하고, 경영 실적이 부진한 아리랑TV의 부사장직을 없애라고 주문한 이후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공직기강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 후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부의 한 간부는 "낙하산 인사 압박을 받던 아리랑TV 부사장직을 아예 없앤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유 전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배를 째 달라는 말씀이시죠. 예, 째 드리지요'라고 위협했다는 말이 부 내에 돌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측이 8일 인사 이전에 유 전 차관의 경질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또 유 전 차관은 청와대의 공직기강 조사를 받으면서 인사청탁의 부당성을 강도 높게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부 내부에는 "유 전 차관이 조사관에게 '앞으로 이런 부적절한 일을 하지 말든지, 나를 정리하든지 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는 말도 퍼지고 있다.

◆ 청와대 "경질 이유는 신문법"=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10일 "유진룡 전 차관 경질의 본질은 당사자의 심각한 직무회피"라며 "새로 통과된 신문법 제정 이후 후속 업무들을 고의로 회피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유 전 차관은 정책홍보관리실장 시절부터 부여받은 임무가 신문법에 의해 출범한 기구들인 신문발전위원회.지역언론발전위원회.신문유통원 문제였는데 고의로 직무를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또 "신문유통원의 경우 부도 직전까지 간 데다 강기석 원장이 개인 사채를 끌어다 기관을 운영할 정도인데 문화관광부가 수수방관했다"며 "언론단체들과 해당기관에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있어 집권 후반기 공직기강을 다잡는 차원에서 차관을 경질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문화부는 공식적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문화부 원용기 홍보관리관은 "대통령의 권한인 정무직 차관급 인사에 대해 해당 부서는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 유 전 차관 '소오강호' e-메일=유 전 차관은 9일 문화부 직원에게 A4 절반 분량의 이임 인사를 e-메일로 보냈다. 그는 e-메일에서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정리하며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용히 떠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고 가렵니다"고 밝혔다. 그동안 청와대 측과 적잖은 마찰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다.

그는 또 중국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에 자신의 심정을 빗대고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제목 그대로 어지러운 세상(江湖)에 오연한 웃음(笑傲)을 보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 전 차관의 e-메일을 읽은 문화부의 한 직원은 "능력 있는 고위 공무원이 허망하게 '소모'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유 전 차관처럼 강직한 공무원이 계속 나와야 중앙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박승희.서승욱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前] 문화관광부 차관(제7대)

1956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