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씨, 장관직 처음부터 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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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다. 이 과정에서 속만 끓인 사람이 있었다. 문재인(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는 '왕수석'이라 불릴 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실세 측근이다.

스스로 법무장관을 하겠다고 나선 적도 없이 어느 날 문 전 수석은 당.청 갈등의 진원지가 돼버렸다. 갈등은 그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지 않음으로써 사그라졌다.

그래서일까. 새 법무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는 날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문 전 수석이 왜 제외됐는지부터 설명했다.

"논의 과정에서 우선 본인이 고사를 했다. 일부에서는 '설득해서 인선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통령께서 김성호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으로 결정했다."

박 수석은 "법무장관 후보로 내정되지도 않았을 때부터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먼저 '강행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본인이 계속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문 전 수석은 자신의 이 같은 뜻을 이병완 비서실장과 전해철 민정수석 등에게 밝혔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소식통도 "문 전 수석이 고사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언론에서 유력 후보로 계속 보도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특히 문 전 수석은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대부'로 알려진 송기인 과거사위원장에게 "차라리 외국에 나가 있는 게 낫겠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 또한 자신을 생각해 고사하는 문 전 수석의 뜻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 "마지막 비서실장 감"=노 대통령은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문 전 수석을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언제나 냉정하고 신중한 사람이고 권세나 명예로부터 초연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런 문 전 수석에게 노 대통령은 이번에 큰 빚을 졌다. 청와대 안팎에선 문 전 수석이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 대통령과 마무리를 함께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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