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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백신 실패를 ‘희망 고문’으로 덮으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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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문 대통령은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당초 11월보다 한달 앞당겨 국민 70%에게 2차 접종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백신 수급 대책을 제시하지 않아 의문을 키우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문 대통령은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당초 11월보다 한달 앞당겨 국민 70%에게 2차 접종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백신 수급 대책을 제시하지 않아 의문을 키우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의 백신 대응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1년 넘도록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으니 해법이 꼬이고 무리수가 이어진다. 정부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허황된 약속과 희망 고문이 반복되면서 국민의 실망과 불신만 키우고 있다.

대통령 “10월까지 국민의 70% 접종 완료” #백신 부족한데 목표 한 달 앞당겨 불신 자초

모더나 백신 도입 차질이 대표적 사례다. 백신 공급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 모더나 본사를 방문했던 정부 대표단이 어제 귀국했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정부가 유감을 표시했고 모더나가 사과 의사를 표시했다. 더 많은 백신 물량이 더 빨리 공급되기를 요청했고 모더나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구체적 논의 결과를 17일 발표한다지만, 모더나가 진전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아 사실상 빈손 귀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백신 부족을 획기적으로 풀지 못하니 정책이 계속 뒤틀린다. 앞서 모더나 백신 물량은 네 차례 펑크 났고, 50대의 2차 접종은 간격이 4주에서 6주로 늦춰졌다. 18~49세 780만 명도 물량이 간당간당해 보인다. 백신이 부족하니 한국 질병관리청은 30~40 연령층에게 잔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도록 연령 기준을 다시 조정했다. 혈전 위험을 무릅쓰고 맞을 사람은 맞으라는 방침에 대해 30~40 연령층은 정부가 무책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젊은층에게 혈전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40세 미만에겐 다른 백신을 맞도록 권고했으니 한국 젊은이들의 불만을 이해할 만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어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를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면서 “10월이면 전 국민의 70%가 2차 접종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11월까지 인구의 70%인 3600만 명 접종 완료 목표를 제시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한 달 앞서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갑자기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내놓고도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의문만 키우고 있다. 국민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현실성 없는 목표로 희망 고문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한 국민은 전체의 20%에 못 미친다.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미국·영국·이스라엘의 사례에서 보듯 백신 기피자가 적지 않고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는 저연령층을 감안하면 ‘국민의 70% 접종’ 달성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 확산 때문에 집단면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단면역에 집착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이 없다. 정부는 과학과 사실에 기초해 정책을 세우고 오류나 잘못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