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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때보다 최악" 카불 함락 임박, 美대사관 기밀자료 소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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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미국대사관. 지난 2001년 12월 17일 대사관 개관식 모습이다.[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미국대사관. 지난 2001년 12월 17일 대사관 개관식 모습이다.[AFP=연합뉴스]

백악관이 14일(현지시간) 정권 붕괴 직전에 몰린 아프가니스탄의 미국민 탈출을 돕기 위해 미군 5000명을 급파했다. 당초 미국 정부는 이달 말까지를 아프간 미군의 철군 시한으로 정했다. 그러나 철군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도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 위기에 몰리는 등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과거 1975년 사이공 함락 때보다 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바이든, 탈출 도울 미군 5000명 투입 #탈레반은 아프간 카불 진입 나서

야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 대피 결정이 내려지자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베트남 호찌민)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고 비판했다.

미군이 철수하는 틈을 노려 아프가니스탄 영토 대부분을 장악했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내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이 임박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날 미군 5000명을 급파했다. 이는 전투 병력이 아닌, 미국인과 일부 아프간인의 안전한 철수를 지원하기 위한 병력이다. 하지만 탈레반의 진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미국이 아프간에서 빼낸 군을 다시 파병하는 등 질서 있는 철군이 무산될 위기에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전투 아닌 탈출 지원 미군 투입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부터 탈레반이 장악 지역을 넓혀가자 지난 12일 대사관 인력을 축소하고 미군 3000명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1000명을 추가로 보내 아프간에 남아있던 병력 650명 이상을 포함해 모두 5000명 규모가 된다.

지난 1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 모습.[AP=연합뉴스]

지난 1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 모습.[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5000명 미군 배치'를 알리면서도 지난 4월 발표한 대로 이달 말까지 미군 철수를 완료해 미국이 참여한 최장기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 내전(civil conflict) 한가운데에 미국이 끝없이 주둔하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할 만큼 했다'는 美, 철군 계획 재확인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철수 결정으로 아프간을 수렁에 빠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미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을 치르면서 가장 훌륭한 젊은 남녀를 파병하고, 1조 달러 가까이 투자했으며, 아프간군과 경찰 30만 명 이상을 훈련시키고, 최첨단 군사 장비까지 갖춰줬다”고 설명했다. 할 만큼 했다는 항변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트럼프가 2019년 9·11 전날 탈레반 대표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올해 5월 1일을 철군 시한으로 합의해 탈레반을 군사적으로 강력한 위치에 놓았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가 퇴임 직전까지 미군을 최소 규모인 2500명까지 줄인 상황에서 정권을 물려받았다고 설명했다. 2019년 합의에 따라 미군을 안전하게 철수할지, 아니면 미군을 증원해 "남의 나라 내전"을 위해 다시 한번 싸울지 선택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더는 미국인 희생은 없어야 하므로 미군 철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자신을 포함해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대통령 2명씩 모두 4명이 아프간 문제를 다뤘다고 상기하면서 “이 전쟁을 5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2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동맹국은 그간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해 왔다. WP는 미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탈레반 대표들에게 폭력적으로 지역을 장악하거나 1990년대 당시와 같은 가혹한 규칙을 도입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뒤 서구의 이런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기밀 자료 소각하는 美 대사관

탈레반은 앞서 북부 주요 도시 마자리샤리프를 손에 넣은 데 15일 카불로 진입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이 임박하면서 미 외교관들은 짐을 꾸리고 기밀 서류 등 민감한 자료를 소각로와 파쇄기로 폐기하는 등 철수 준비를 시작한 상태다.

미국은 36시간 안에 소수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 주아프간 대사관 직원의 대피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미 CBS 방송은 이날 전했다. 국무부 외교경호실(DSS) 특수요원, 대사 등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이 남게 된다.

나머지 직원과 가족, 아프간인 조력자와 그 가족 등은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공항 안에는 비자 심사, 출국 업무를 위해 격납고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대사관이 설치될 것이라고 CBS는 전했다.

A한 남성이 지난 14일 탈레반이 장악한 헤라트에서 탈레반기를 팔고 있다. [AP=연합뉴스]

A한 남성이 지난 14일 탈레반이 장악한 헤라트에서 탈레반기를 팔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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