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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은 아예 무시해야"…문자폭탄 맷집 세진 與 의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성 지지자의 문자폭탄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지지자가 배설물처럼 쏟아내는 말은 아예 무시해야 한다”며 “대선 주자나 캠프 관계자들도 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인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당원 의견이 배설물이냐”는 항의와 송 대표를 향한 문자폭탄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 대표실 관계자는 “송 대표가 취임한 날부터 문자폭탄을 안 받는 날이 없었고 그것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민주당 내에서 “문자폭탄에 내성이 생겼다”는 말을 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21대 국회 하반기 국회 법사위원장직을 넘겨주기로 지난달 야당과 합의한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에게도 문자폭탄이 쇄도했음에도 그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끼리는 서로 '문자폭탄 대응법'을 공유하면서 맷집을 키우기도 한다.

각양각색 문자폭탄 대응법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문자폭탄 인증샷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문자폭탄 인증샷

①무시파=문자폭탄을 여러 번 겪은 대다수 의원은 이를 무시한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처음 수천통의 문자를 받았을 때는 많이 위축됐고 특히 지역구 유권자라고 하면 더 걱정됐는데 갈수록 무뎌졌고 이제 일상처럼 받아들인다”며 “친한 동료 의원들도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문자가 몰릴 때 휴대전화를 꺼 두거나 안 보면 된다”며 “휴대전화를 두 개 쓰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송영길 대표도 10일 “문자폭탄이 와서 휴대전화가 뜨거워지면 얼음 속에 넣어놓을 때가 있다”며 “욕을 쓰면 아예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사직을 내려놓는 후보로 뛰는 게 좋겠다”고 말한 뒤 문자폭탄을 집중적으로 받은 이상민 민주당 선관위원장도 기자들에게 “내가 한마디로 동네북이다. 감내하겠다”고 쿨한 모습을 보였다.

대선 주자 중에선 이낙연 전 대표가 무대응파다. 캠프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올 초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을 때 많은 문자를 받았지만, 이를 지우지도 않고 다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②차단파=지난해 11월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정성호 위원장은 출석한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적당히 하세요. 좀!”이라고 호통을 친 뒤 욕설과 막말이 섞인 메시지를 무수하게 받았다. 이때부터 정 의원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악성 문자를 보낸 번호를 차단한다. 정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게 “1000개쯤 차단하면 폭탄이 안 온다”는 조언도 했다고 한다.

정 의원과 가까운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 4월 기자들을 만나 “1000개쯤 차단하면 문자가 안 들어온다고 한다”고 비슷한 말을 했다. 이 지사는 “민주당 권리당원이 80만명, 일반당원까지 300만명에 달하는데 문자폭탄을 보내는 당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과잉 대표되고 과잉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조응천 의원도 욕설이 섞인 문자는 전부 차단한다. 조 의원은 “귀찮아도 꼬박꼬박 차단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③답장파=문자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에게 답장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정중하게 답장을 보내면 깜짝 놀라면서 존댓말로 사과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전화를 걸어서 상대방과 토론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당신이 진짜 열성 지지자라면 당원이 맞는지 확인해보자”며 “당신 전화번호를 당원 명부와 대조해보는 데 이용하는 것에 동의하냐고 물어본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악성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역으로 후원금 모집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대부분 황당해하지만 가끔 후원금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양념’에서 ‘배설물’ 된 문자폭탄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2030 초선 의원들이 지난 4월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입장문을 내기 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2030 초선 의원들이 지난 4월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입장문을 내기 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일 때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한 뒤 친문파의 주된 압력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4월까지도 민주당 2030 초선 의원(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5명이 재·보궐선거 참배의 원인 중 하나로 ‘조국 사태’를 거론했다가 강성 지지층에 ‘초선5적’으로 찍혀 문자폭탄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송 대표는 지난 4월 당 대표 경선 때만 해도 문자폭탄에 대해 “우리 당의 소중한 자원이다. 개혁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랬던 그가 문자폭탄을 '배설물'로 부르게 된 건 친문파들의 행동을 혐오하는 중도층의 표심을 의식해서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송 대표 본인도 기자들에게 “(강경파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대선 주자들은 중도층을 향한 행보를 하기 쉽지 않다”며 “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당 지도부가 중도를 껴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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