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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고 무책임”…16세 선거권 반대 시위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9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조 교수는 9일부터 13일까지(11일 제외) 이 시위를 진행한다고 한다. 정희윤 기자

9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조 교수는 9일부터 13일까지(11일 제외) 이 시위를 진행한다고 한다. 정희윤 기자

‘이념정치 OUT! 교실 수호! 학생의 꿈을 정치에 이용말라!’

9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 반대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6월 강민정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장경태 민주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 등 범여권 의원들이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지방교육자치법ㆍ공직선거법ㆍ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청소년의 정당 활동과 선거 운동을 보장하고 만 16세 이상부터는 투ㆍ개표를 참관하고, 교육감 선거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조 교수 “정치의 압제와 폭력 속으로 밀어 넣는 악법”

조 교수는 “법 개정안 발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정치 참여는 책임이 따르는 활동인데 학생들에게 경험이라는 말로 포장해 그 책임의 현장 속에 뛰어들게 하는 건 너무나 잔인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핑계로 학생들을 정치의 압제와 폭력 속으로 밀어 넣는 악법”이라고도 했다. “정당 활동과 교육감 선거권을 고등학생들에게 확대하는 수간부터 교실 자체가 정치 현장화되어버릴 것”이라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조 교수는 “학교라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바뀌는 건데 교육계 등과 아무 소통과 논의도 없이 국회가 발의해서 통과되면 역사에 무책임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정당 가입 연령을 정당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외국과 우리를 비교하면 안 된다”며 “교육 시스템은 그 문화와 전통에 맞게 하는 거기 때문에 무작정 따라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선관위 ‘정치 관계법’ 개정 의견 낸 지 9일 만에 발의

지난 6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앞서 지난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고등학생의 정당 가입과 유튜브 등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ㆍ정당법ㆍ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강민정 원내대표, 장경태 의원과 조정훈 대표는 9일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 대한 국민적인 요구와 중앙선관위의 긍정적 개정 의견에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며 ”민주주의 확대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탄생한 이번 21대 국회에서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법안들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 찍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 경험하는 교육”

강 원내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학생들한테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찍으라는 게 아니다”며 “다양한 정치 의견과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험을 통해 만 16세 학생들이 2년 뒤 진짜 유권자가 됐을 때 정치적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2월 국회 앞에서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2월 국회 앞에서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6월 이 법안에 대해 교원 84%가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전국 유ㆍ초ㆍ중ㆍ고 교원 17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다. 반대 이유로는 ‘학생들의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다’가 42.1%, ‘학교 및 교실의 정치화 우려’가 30.7%였다.

교총 “교원 84%가 반대…제한 아니라 보호”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학생들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부분에서는 동의한다”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정치 활동도 많은데 꼭 정당 활동을 하거나 투표에 직접 참여해서 특정 정당과 인물을 지지하는 것만이 정치 참여고 참정권 확대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처럼 정당 간 이념 대립이 극심한 부분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성년자가 정당 활동을 하게 되면 오염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조 대변인은 또 “미성년의 참정권을 어른들이 뺏고 제한한다고 대립적으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법상 성년과 미성년자를 나누고 미성년자의 술, 담배를 제한하는 것처럼 미성년자가 올바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성년이 될 때까지 준비하고 보호해주자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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