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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준석, 누가 '센터'냐?…국민의힘 '고래·멸치' 어장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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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들을 예방해 이 대표와 함께 회의장 배경막에 있는 '로딩중' 그래프에 배터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들을 예방해 이 대표와 함께 회의장 배경막에 있는 '로딩중' 그래프에 배터리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에서 때아닌 ‘주인공’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3·9 대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의 대선 주자가 아닌 이준석 대표가 주인공이 되려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면서다. 일각에선 이러한 논쟁이 치열한 경선을 앞둔 국민의힘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6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후보들의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지금부터는 함께 모아서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도 후보자들에게 각자가 자신의 프로그램과 체질에 맞춰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쪽방촌 봉사 활동 등 최근 국민의힘 경선관리위원회(위원장 서병수)가 주관한 행사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홍준표 의원 등이 잇따라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 진행자가 의견을 묻자 이같이 답한 것이다.

김재원 최고위원도 전날 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해 “이 대표가 경선 관리를 잘하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가지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대선 주자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그분들이 더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본선에 가서도 지지를 받을 텐데 아직까지는 당 대표가 좀 너무 주인공이 되어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야권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총장 측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도부에서조차 모든 경선 후보를 집합시키는 형태의 행사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대선 경선의 주인공은 대표가 아닌 후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삼계탕과 물을 혹서 취약계층인 기후약자분들에게 나눠주는 자원봉사행사를 갖고 있다.   경선 후보 중에서는 김태호, 안상수, 윤희숙, 원희룡, 장기표, 장성민, 이소연(최재형 후보 부인), 하태경, 황교안(가나다순) 후보가 참석했다.  이준석 대표가 삼계탕을 배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삼계탕과 물을 혹서 취약계층인 기후약자분들에게 나눠주는 자원봉사행사를 갖고 있다. 경선 후보 중에서는 김태호, 안상수, 윤희숙, 원희룡, 장기표, 장성민, 이소연(최재형 후보 부인), 하태경, 황교안(가나다순) 후보가 참석했다. 이준석 대표가 삼계탕을 배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경선 후보들과) 사진을 찍으면 자기(이준석 대표)가 중심에 서려고 한다”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주장을 담은 기사를 올린 뒤 “남들이 9월말 경선 출발론 이야기하고 그럴 때 혼자 8월 경선 출발론 이야기하면서 경선 일정 당기고 후보들이 빨리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만들어 주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적반하장 하는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정작 후보들이 주목받지 못하면 ‘대표는 후보 안 띄우고 뭐하냐’ 할 분들이 지금와서는 ‘대표만 보이고 후보들이 안보인다’ 이런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후보들이 중심이 되려면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총재가 실패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선거 치르던 게 ‘후보 중심 선거’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드는 것이 후보 중심 선거”라고 강조했다.

이준석, 자신 비판하는 윤석열 측에 “대표 공격해서 얻는 게 뭐냐”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선 익명을 통해 이 대표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최재형 전 원장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하게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고 밝힌 뒤 “어떤 캠프 같은 경우는 익명 인터뷰로 ‘왜 오라 가라 하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분들도 있다”며 “정확히 말하면 봉사활동이나 당내 경선 일정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다. 경선준비위원회가 서병수 위원장의 영도 하에서 다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선 캠프 측에서 당 대표를 공격해서 얻는 게 뭐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고 직격했다.

‘공정’ 개념 놓고 이준석과 유력 후보 측 인식 차이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같은 논란이 이 대표와 유력 경선 후보 측이 보는 ‘공정’의 개념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선 후보 등록을 한 누구든 똑같이 대우받고 기회를 제공받는 게 공정이라는 이준석 대표의 입장과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격차에 맞게 달리 대우받는 게 공정이라는 유력 대표 측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차는 이날 벌어진 ‘고래와 멸치’ 논쟁에서도 드러났다.

윤석열 전 총장과 가까운 정진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 당 대선 후보 경선의 주인공은 후보들이다. 당 지도부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런 뒤 “가두리 양식장으로는 큰 물고기를 키울 수가 없다. 멸치, 고등어, 돌고래는 생장 조건이 다르다”며 “우리 당 후보 가운데는 이미 돌고래로 몸집을 키운 분들이 있다. 체급이 다른 후보들을 다 한데 모아서 식상한 그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 방문해 발언을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 방문해 발언을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표도 곧바로 응수했다. 이 대표는 “저는 멸치와 돌고래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올바른 경선 관리라고 생각한다”며 “돌고래 다쳤을 때 때린 사람 혼내주고 약 발라주는 것도 제 역할이고 멸치가 밖에 나가서 맞고 와도 혼내 줄 것”이라고 맞섰다.

정 의원의 ‘고래와 멸치’ 비유에 대해선 다른 후보 측의 반발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선 후보 측은 “당내 경쟁자를 멸치에 비유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다”며 “지도부에 불만을 표시하며 그런 비유를 한 사람이 밴댕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진석 ‘고래와 멸치’에 다른 후보 측 “그런 비유가 밴댕이”

당내에선 지난달 30일 윤석열 전 총장이 이 대표 등 지도부가 당사에 없는 상황에서 기습 입당한 이후 잡음이 계속 이어지는 게 단순한 엇박자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다른 경선 후보 측 인사는 “경선 후보가 당 지도부와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선거 전략적으로는 좋을 리가 없다”며 “그런데도 계속 마찰음을 일으키는 건 앞으로 이어질 경선 과정에서 지도부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걸 계속해 외부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준석 대표의 실질적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서 비롯된 갈등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준석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그러나 당내에선 실질적인 그의 임기를 5개월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라 11월 9일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면 그 후보가 실질적 당무 권한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자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당헌 74조)는 규정에 근거해서다.

실질 임기 얼마 안 남은 이준석과 후보 간 주도권 다툼 해석 

쉽게 말하면 앞으로 3개월 뒤면 당을 대표하는 얼굴이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바뀌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도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표로서 온전히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많이 남지는 않은 만큼 남은 기간이라도 당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안철수 합당, 젠더 갈등 등 동시다발 전선에 우려도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너무 다양한 전선을 동시에 만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합당 신경전, 젠더 갈등을 둘러싼 논쟁 등 이미 당밖 인사들과 공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주도권 다툼까지 벌이게 되면 정치적 소모가 상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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