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품 실을 배가 없다…‘컨테이너 가득’ 주차장이 창고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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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비데 제조사 아이젠의 경기 김포 공장 주차장 전경. 글로벌 물류대란이 시작한 지난해 7월 상품 보관용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해 제품을 보관하고 있다. 물류대란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강기헌 기자

비데 제조사 아이젠의 경기 김포 공장 주차장 전경. 글로벌 물류대란이 시작한 지난해 7월 상품 보관용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해 제품을 보관하고 있다. 물류대란 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강기헌 기자

주차장은 40ft(피트) 컨테이너 4개가 점령했다. 갓 생산한 비데를 보관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대여한 것이다. 8명이 쓰던 2층 사무실은 자재용 창고로 바꿨다. 글로벌 물류대란에 김포의 한 중소기업 공장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중소기업 덮친 수출 물류 대란 현장
코로나로 美 수출 늘었지만 선적 지연
"블랙프라이데이 재고 부족해 못 팔아"
컨테이너선 이어 벌크선 부족 현상도
하반기에도 선박 운임 고공행징 계속

21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아이젠의 공장에선 짬통 더위 속에서 수출용 비데 생산으로 눈코뜰새 없었다. 아이젠은 자체 브랜드와 제조자 개발생산(ODM)으로 국・내외 주요 브랜드에 비데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이다. 공장에 딸린 창고 앞에선 지게차가 수출 상품을 컨테이너 차량에 쌓아 올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애를 먹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모로나19)의 종식을 기대한 세계 각국에서 물동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에즈 운하 사고 등이 물류난을 부채질한 결과다. 이날 만난 유명재 아이젠 부사장은 “지난해 하반기 물류대란이 시작된 후부터 수출용 제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따로 컨테이너를 빌려 보관하고 있다”며 “코로나 전에는 생산하면 바로바로 수출 선적이 가능해 재고관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선적 스케줄에 생산 일정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기 김포에 위치한 아이젠 창고에서 수출용 비데를 컨테이너에 쌓고 있다. 주차장을 제품 보관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 창고 바로 옆에 컨테이너 운반 차량을 주차했다. 강기헌 기자

지난 20일 경기 김포에 위치한 아이젠 창고에서 수출용 비데를 컨테이너에 쌓고 있다. 주차장을 제품 보관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 창고 바로 옆에 컨테이너 운반 차량을 주차했다. 강기헌 기자

컨테이너 빌려 주차장에 놓고 수출 상품 보관

이 회사의 미국 수출은 코로나 이후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19년 미국 수출액은 9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는 180억원으로 늘었다. 두루마리 화장지 품절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비데의 맛’을 본 후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한다. 2019년 3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384억원으로 늘었다.

유 부사장은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때는 미국 바이어가 재고가 없어 상품을 팔지 못했다”며 “그런데 올해 들어 주문이 들어와도 선박을 부킹(예약)하지 못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도 뉴욕 항 기준으로 미국 수출은 1달 남짓 선적 일정이 밀려있다. 미국 비데 보급률은 1% 미만에 불과해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설 기회가 찾아왔지만 물류대란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아이젠은 이달 24일 10TEU(20ft 컨테이너 1개) 분량의 비데를 수출할 예정이다. 무역협회와 SM상선이 만든 중소기업 해상운송 지원사업에 선정돼 미국 행 컨테이너를 어렵게나마 마련했다. 유 부사장은 “우리 같은 수출 중소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임시 물류 창고 등을 저렴하게 지원해 주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 같다”며 “물류대란이 장기화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SCFI).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SCFI).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컨테이너선 운임도 역대 최고치 찍어 

글로벌 물류대란이 발생하면서 컨테이너선의 운임도 크게 상승했다. 운임 상승은 올해 들어서도 지속하고 있다. 미주 서안 노선 운임은 1FEU(40ft 컨테이너 1개)당 최근 5334달러를 찍었다. 역대 최고치다. 유럽 항로 운임도 1TEU당 7032달러를 기록했다. 컨테이너 해상 운송료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6일 4000을 돌파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출 선박 운임 상승 원인은 복합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에 코로나19, 수에즈 운하 사고 등 다양한 악재 겹쳤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조성대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코로나 이전에 오랜 침체를 겪은 해운업은 적극적인 선박 발주에 나서지 않았다”며 “코로나로 일시적 위축 후 급격히 늘어난 선복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위 로빈슨 컨테이너 지수(HRCI).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호위 로빈슨 컨테이너 지수(HRCI).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여기에 코로나19로 컨테이너선 스케줄이 꼬였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항구와 항구를 오가며 물건을 선・하적하는 컨테이너선은 일반적으로 노선버스에 비유되는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항만 작업자들이 출근하지 못하면서 정해진 스케줄이 깨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한 항만 셧다운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 지난 3월 수에즈 운하 사고가 뮬류난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발틱운임지수. 벌크선 운임지수 변화를 나타낸 지표다. 올해 들어 운임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자료 한국관세물류협회

발틱운임지수. 벌크선 운임지수 변화를 나타낸 지표다. 올해 들어 운임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자료 한국관세물류협회

컨테이너선 이어 벌크선 부족으로 확대  

수출 선박 부족은 컨테이너선에 이어 벌크선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화물전용선이라 불리는 벌크선은 계약에 따라 항구에서 다른 항구로 상품을 나른다. 자동차와 중장비, 철광석 등이 단골 상품이다. 컨테이너선이 노선버스라면 벌크선은 택시에 비유된다. 늘어난 유동성에서 시작한 보복소비가 벌크선 부족 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벌크선 운임 가격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이달 들어 3000 이상을 기록하면서 1000 이하에 머무른 지난해 상반기보다 3배 이상 상승했다. 국내 한 중장비 생산 기업 관계자는 “수출 선박을 구하지 정해진 수출 물량 중 일부를 한 달 뒤로 미루기도 한다”고 말했다.

선박 운임 하반기에도 고공행진 계속할 듯 

전문가조차 수출 선박 운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반기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사리 내다보기 힘들다. 이제는 코로나 델타변이와 유가 상승에 더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운임 가격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해상운송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직전에는 세계 컨테이너선 10~15%는 상품을 선적하지 못하고 해상에서 대기했지만 이제는 대기하는 선박이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정호상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원유 가격 상승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운임지수 고공행진은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물류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수출 중소기업을 상대로 정부가 세제혜택 등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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