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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부활 합의 왜···송영길 ‘문파 희석’ 이준석 ‘조직 정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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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송영길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여당이 지구당 부활을 먼저 꺼낸 건 뜻밖이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가 최근 정치현안으로 떠오른 ‘지구당 부활’과 관련해 1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지난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첫 만남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 번복 논란으로 떠들썩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파장이 긴 건 지구당 부활 합의였다. 이 관계자는 “이날 합의된 나머지 두 사안(전 국민 재난지원금,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보다 사안의 무게나 시급성이 덜했다”며 “심지어 의석수가 적은 우리에게 더 필요한 사안인데도 송 대표가 먼저 꺼낸 게 고마울 정도”라고 말했다.

송영길은 왜 지구당 부활을 꺼냈나

지구당은 정당의 시·군·구 단위 공식 기구로 정당 정치의 모세혈관으로 오랫동안 기능했다. 그러나 ‘차떼기 사건’으로 기억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계기로 분 정치개혁 바람을 타고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서울시장)이 주도한 ‘오세훈법’(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구당 폐지는 현역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지역구에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은 사무실을 통해 정당 활동을 하지만, 원외 정당은 사무실도 둘 수 없게 되면서 지역사회 내 정당 간 영향력 차이도 현격해졌다. 지구당 부활은 지난 총선에서 ‘거여’로 거듭난 민주당(171석)보다 원외 지역이 많은 국민의힘(103석)에게 더 이득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송 대표는 왜 불쑥 첫 만남에서 이 카드를 던졌을까.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 대표는 1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더 유리하니 관련법이 통과되기 더 쉬운 구도”라며 “당장의 이익은 민주당에 덜할 수 있지만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구당 부활은 왜 해야하나.
“원외위원장들이 사무실을 못 두니 ‘지역개발연구소’ 등의 이름으로 사무실을 두고 정치활동을 하는데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공식화를 시켜서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잘 통제하면 문제 될 건 없다.” 
마지노선이 있나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가급적 대선 전에 관련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대선에선 실핏줄 역할을 하게 될 거다.”

민주당 입장에선 지난 4월 재·보선과 5월 전당대회 국면에서 지적된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역 조직을 되살려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수 당원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학 박사)은 “책임성이 부족한 익명 당원들이 팬덤을 중심으로 당을 지배해왔다”며 “지구당은 당원 관리를 통해 책임있는 당원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면서 다수 당원의 ‘과다대표’ 경향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0선’ 이준석은 왜 수용했나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 이 대표에겐 밑바닥 조직을 다지는 게 급선무다.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이어(2018년 지선, 2020년 총선) 패하는 과정에서 지역 조직의 와해는 국민의힘의 고질적 문제로 거론됐다.

지구당 부활 논의의 역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구당 부활 논의의 역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울 49개 의석 중 8석만을 확보한 국민의힘에겐 원외 지역 관리는 부담이 큰 과제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대선을 앞두고 조직화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지구당이 합법화되면 취약지역인 수도권에서 민주당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상당 기간 원외 당협위원장 자리를 경험했다는 점도 합의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서울 노원병에서 20·21대 총선과 2018년 재보궐선거 등 세 차례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소속 핵심 의원은 “이 대표가 가진 것 없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원외 지역구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차례 불발…여론 설득이 관건

여야 지도부는 2004년 폐지 이후에도 세 차례(2008·2010·2015년) 지구당 부활에 합의했지만, 법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2008년엔 여야 간 이견 탓에 합의가 불발됐고 2010년엔 여론의 반발이 컸다. 2015년엔 선거구 획정 등에 밀려 논의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0 청년인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30 청년인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학계에선 여론 환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정치권이 현장과의 결합력을 높이면서 지구당 부활에 부정적인 국민들의 시선을 바꿔나가는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전 한국정당학회장)는 “지구당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정치 활성화의 창구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도 복병은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에 반발했던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다. 원내 핵심관계자는 “지구당 부활은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할 사안이고 정치 퇴행의 우려도 있다”며 “두 대표간 합의만으로 진척될 일이 아니다. 원내 지도부에서도 논의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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