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에 엇갈린 환영과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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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독의 전면적인 국경개방 및 획기적인 개혁추진선언에 대해 세계 각국은 우선 환영을 표하면서도 사태의 급격한 전개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국은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유럽에 새로운 불안정이 초래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워싱턴·뉴욕·동경의 각 특파원을 통해 동독사태발전에 대한 각국의 반응과 대응을 알아본다.<편집자주>
【워싱턴=한남규 특파원】미국의 베이커국무장관은 베를린상황을『전후동서관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규정,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건을 그가 처음으로 안 것은 워싱턴을 방문중인 필리핀의 아키노대통령과 10일 오찬하던 중 간부가 급히 넣어준 목지를 읽고 나서였다.
49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창설 등 전후 반세기동안 유럽질서의 편성과 운영에 있어 주역을 맡아온 미국이 지금 관객의 모습으로 바뀌어져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시시각각 전개되는 동독 등 동구의 새로운 변화를 파악하느라 바쁠 뿐이다.
미 대통령은 취임초년에『이런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베이커는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세계가 전개될 수 있다고 믿을 수는 있되『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실토했다.
미국이 현 과정에서 민감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혹시 사대악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언행을 최대한 삼가자는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장벽 제거가 있기 전 미행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유럽에서 일고있는 전후질서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같은 분석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국면이 터져나온 셈이다.
부시와 베이커가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은 급속한 사태전환이 유럽을 불안정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미행정부의 이 같은 자세는 기본적으로 상황전개의 불확실성과 대응정책미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민주화를 향한 동구변화과정을 경련이 힘으로 중지시킬 경우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 미국은 우선 오는 12월초 지중해의 미소정상회담에서 독일의 장래와 동구사대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의중탐색에 신경을 쓰고있는 것 같다.
【뉴욕=박준영 특파원】부시행정부가 동독의 개혁을 환영하면서도 너무 급격한 변화라 대응정책을 아직 마련치 못하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학자들의 시각은 동독의 사태변화를 환영하는데는 일치하지만 그것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과 우러의 시각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긍정적 시각은 현재 사태의 극적인 요소가 진정되고 동독이 진정한 개혁을 성공시킨다면 유럽의 새로운 평화질서가 구축되는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으로 카터 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앞으로 독일이 첫 단계로 느슨한 연방제로 통일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현재의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정치지리적·영토적 안정의 기둥으로 유지되면서 두 블록이 접촉관계를 확립한다면 새 평화질서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이념적 경찰국가 역함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로 재조직될 것이 요구된다.
이와 달리 우려론자들은 현재 동독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든 통독으로 이어져「대독일」이란 유럽의 해묵은 문제가 재등장할 것을 지적한다.
비관론자들은 비스마르크적인 통일된 중앙집권적 독일은 너무 크고 역동적이어서 모든 이웃국가들을 자동적으로 위협하게되어 이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합을 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행복한 미래는▲강력하고 안정된 서구연합의 구성▲동독의 개방, 그리고▲동·서독양쪽이 미국과 소련에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에 있다고 전망한다.
이들은『문제는 동독이 서방에 개방되면서도 붕괴되지 않고 합리적인 국가로 존립할 수 있느냐 하는것』이라면서 우려하고있다.
【동경=방인철특파원】일본 언론의 「이 역사적 순간」을 보는 시각은 우선 예치 못한 동독의 변화속도에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된다.
일본 언론은 「동독으로부터의 이주가 격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이는 동독크렌츠정권이 노린 쇼크요법이 주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주희망자의 극적인 감소는 크렌츠정권이 체코·헝가리를 통한 대량 출국에 고심한 나머지 베를린장벽붕괴라는 극적조치를 통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 보려는 의도가 성공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국경을 개방한 동독의 노림수는 EC통합으로 서독과의 경제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을 우려, 경제의 국제화만이 동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진단한 결과라고 보았다.
한편 프랑스·이탈리아 등은 동독의 전면적인 개혁의지가 가시화되자 이에 일단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독일의 재통일이 자국에 미칠지도 모르는 악영향과 유럽의 단결에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일본언론들은 전했다.
소련을 비롯,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등 동구권국가들도 동독의 국경개방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베를린장벽은 여전히 지리적·이념적 분단을 상징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루마니아는 동독사태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도관제를 실시하고있다.
이밖에 중국도 동구권의 급격한 개혁바람에 대해 침묵의 장막을 쳐놓고 있다고 북경의 서방외교관들은 전했으며 이에 반해 대만은 동구권의 민주화 개혁이 결국 중국의 전체주의 정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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