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주민 계속 줄어 "무인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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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동중국해외 거친 파도를 한 몸에 감싸안은 채 묵묵히 「국토의 최남단 초병」역을 자임해온 마라도가 지난 5년 동안 단 1명의 아기도 태어나지 않아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머지 않아 무인도로 변할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수 천년에 걸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해안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 마라도에 문헌상 처음 사람이 살게된 것은 지금부터 1백6년 전인 1883년. 첫 이주자는 나씨 성을 가진 일가족이었다고 한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다시 남쪽으로 11km나 떨어져있는 마라도의 정확한 위치는 북위 33도6분31초, 동경 1백26도11분3초. 행정구역상 공식명칭은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 마라도.
넓이는 30ha, 평균 해발 표고는 39m, 동서길이 0·5km에 남북직경 1·2km의 타원형인 이 섬의 둘레는 4·2km다.
1915년에 마라 등대가 세워진 후 마라도는 태평양 및 동중국해의 거센 물결에 시달리며 험한 항해를 계속하던 수많은 배들의 말없는 벗이자 길잡이였으며 한국 땅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리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이 섬에는 현재 20가구 48명(남자 24, 여자24)의 주민이 살고있는데 이중 국민학생이 9명 (남자 4, 여자 5)이다.
이들 주민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며 서로 혼인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 친척이 되어버려 더 이상 섬사람끼리는 결혼을 할 수 없다.
살고 있는 성씨는 김·나·지·이·조·강씨 등 6성이나 모두가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들이다.
또 이 섬에 20세 이하의 여자는 국민학생 5명과 7세 짜리 1명뿐이고 처녀라고는 가파 국민학교 마라 분교에 임시사무보조원으로 일하고있는 김경은양(20·대전시) 1명뿐이다.
반면 장가를 가야만할 20대의 총각은 6명이나 있어 그야말로 「심각한 시골총각 결혼난」의 대표적인 지역이 되고 있다.
외지로 나가지 않고서는 신부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마라도총각들은 필사의 탈마라도 작전을 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마라도에서는 최근 5년 동안 단 1명의 어린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애기를 낳을 사람들, 즉 신혼부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인구는 84년 주민등록 등재자가 90명이었으나 5년 동안 42명이나 줄었고 내년에 다시 5가구가 섬을 떠날 예정이어서 또 14명이 줄어들 실정이다.
가파국민학교 마라분교장이며 주임교사 강영주씨는 그렇게 되면 어린이가 또다시 4명이 전학을 가게 돼 겨우 5명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마라분교는 1958년 개교).
이 아기불모의 섬 마라도에 최근 가장 행복한 남자이며 정말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내」는 금년 5월에 그 어렵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웠던 결혼을 한 김춘길씨(27·마라분교 보조원).
이 바람에 5년여에 걸쳐 계속된 아기부모의 섬에도 내년쯤엔 새 아기가 태어날 꿈에 부풀어있다.
그렇지만 신부 양은숙씨(26)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친정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말해 주민증가의 기대는 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김씨가 행운을 잡게된 것은 지난해 11월 어느 날의 풍랑 덕분이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서울에 산다는 할머니 2명이 가파도에 가는 길에 뱃사공이 잘못해 마라도에 들렀는데 마침 풍랑이 몰아쳐 뱃길이 끊겨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두 할머니는 김씨 집에서 4일간을 묵게 됐는데 극진한 대접과 김씨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이들 할머니의 중매로 김씨는 지난해 12월 현재의 부인 양씨와 선을 본 후 바로 결혼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의 작업은 대부분 여자들이 하며 젊은 총각들은 생계보다는 결혼을 위해 외지로 떠나려 하고 있다.
이곳 처녀당에는 처음이 섬을 개척하기 위해 도착했던 이씨 성을 가진 일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섬에 도착해 살아가다 힘이 들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일가족이 섬을 떠나려 했을 때 주인 이씨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 『맏딸을 두고 가지 않으면 일가모두를 삼키겠다』고해 큰딸을 속여 남겨두고 간 후 3년만에 와보니 처녀가 바닷가에 앉은 채 백골만 남아있었다는 것.
외롭게 죽어간 처녀의 고혼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그곳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라도를 오가는 사람이 뱃길에 희생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마라도=신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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