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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아이 데리고 출근하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4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런던의 로펌에서 일하고 있을때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이 있다. 방학이었고, 연기하거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분은 하필 그날 사정이 있어서 도저히 시간에 맞춰 올 수가 없었고,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영국에서는 어린아이를 혼자 집이든 어디든 둘 수 없다. 아이 혼자 있어도 되는 연령을 약 만 12세 정도로 본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아이와 같이 출근해서 사무실에 두고는 회의에 들어갔다. 아이는 그사이에 동료들에게서 쿠키도 얻어먹고 사무실 구경도 하고는 변호사란 매우 지루한 직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용혜인 의원 아이 데리고 국회 출근 #‘국회 회의장 아이 동반법’ 발의도 #칭찬 않고 “애 볼 사람 찾지” 비난 #피치 못해 아이 동반한 게 잘못인가

사실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전에도 가끔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차마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갓난아기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다. 물론 매일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맡길 곳도 돌봐줄 사람도 찾을 수 없는데 본인은 꼭 출근해야 하는 상황인 경우 할 수 없이 데리고 오는 것이다. 따라서 엄마들만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것은 아니고 아빠들도 사무실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훨씬 더 드문 일이지만 말이다.

당시 로펌이 유난히 아이들에게 친화적인 것은 아니었다. 수유실이나 따로 아동을 돌볼 수 있는 편의시설 같은 것은 없다. 다른 직장은 어떤가 봤더니 아이 동반 출근이 용인되는 곳은 종종 있는 것 같다. 아이도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나 직원이 본인들 자녀를 데리고 학교에 왔더라는 소리를 가끔 한다. 다들 대단하거나 유난한 일이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이해한다고 한다.

선데이칼럼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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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직장에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계속 다닐 수 있으려면 누군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어야만 한다. 어딘가 맡기거나 누군가 아이를 봐준다고 하더라도 영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곤란한 일이 생긴 그 하루,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고 직장이 그런 사정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준다면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는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면서 과연 양육과 직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라면 결혼을 하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고 대책 마련에 수선을 떠는 것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양육에 호의적인 사회 분위기다.

기본소득당 소속 용혜인 의원이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국회에 출근한 모습을 뉴스로 봤다. 용 의원은 ‘국회 회의장 아이 동반법(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는데, 이 법은 ‘여성 의원이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를 국회 회의장에 동반하는 걸 허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고 한다. 표결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 회의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현행법대로라면 회의장에는 아기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 151조(회의장 출입의 제한)에는 국회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을 ‘의원,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 그 밖에 의안 심의에 필요한 사람과 의장이 허가한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회에 보육 및 수유시설이 있긴 하지만 아기에게 수유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표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기를 억지로 떼어놓고 회의장에 들어가든지 표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즉, 엄마가 국회의원인데 젖을 먹여야 하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회의장에 들어가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매우 제한적인 내용의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의 발의와 아기를 데리고 출근한 용 의원에 대하여 이기적이라거나 아기를 떼어놓기 싫으면 일하지 말라거나 애 볼 사람을 찾으면 된다거나 하는 비난 역시 봤다. 일단 법 취지를 이해 못 한 반응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기 때문에 표결을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개정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외려 진지하게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노력을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아이를 돈 걱정, 마음 걱정 없이 맡겨 둘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굳이 데리고 출근하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와 늘 붙어있고 계속 돌봐야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도 재밌지도 않은 일이다. 오죽하면 ‘애 볼래 밭맬래 하고 물으면 밭맨다고 한다’는 속담이 다 있을까. 애 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저런 비난을 하는 것은 아이를 전담하여 키워본 적이 없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의 생활에 제약이나 곤란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자백이다.

다만 한 가지 더,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여성 의원’뿐 아니라 ‘남녀 불문 아이를 동반할 필요가 있는 의원 및 직원’ 등으로 확장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의원 내지 의원만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성한 국회에 그것도 회의장에 아이를 데리고 온다니 안 된다는 등의 분개는 하지 말았으면 싶다. 몸싸움하고 험한 말하는 것이 국회를 모독하는 짓이지 피치 못해 아이를 동반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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