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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펴나 싶던 해운업…공정위 5000억대 과징금에 발목?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서 열린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 및 1만6000TEU급 한울호 출항식에서 컨테이너를 한울호에 선적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달 29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서 열린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 및 1만6000TEU급 한울호 출항식에서 컨테이너를 한울호에 선적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해운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 수출입 물동량이 급증하고 운임이 고공비행하면서다. 그런데 경쟁 당국이 해운업계에 최대 5000억원대 과징금을 매기기로 하자 비상이 걸렸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HMM·SM상선·흥아상선·장금상선 등 국내 12개 컨테이너 선사가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항로의 운임을 담합했다며 재제 절차에 착수했다. 조사를 마친 공정위는 각사에 조사 결과와 과징금 부과 기준 등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보냈다.

업계는 공정위가 선사에 부과할 과징금 규모가 총 5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정위가 한국·동남아 항로뿐만 아니라 한국·중국, 한국·일본 항로 운임에 대한 추가 조사에 나설 경우 과징금 규모가 2조원 수준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국내 목재 수입업계는 동남아 항로의 운임을 일제히 올려 청구하는 등 담합이 의심된다며 2018년 해운사들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해운법은 선사들이 운임이나 화물 적재 등 운송 조건에 대한 ‘공동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단 공동행위를 하려면 화주(貨主) 단체와 협의한 뒤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해운업계의 과거 공동행위가 해운법이 인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운업계는 공정위 제재가 업황 개선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국내 연안 해운선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해운조합은 2일 “공정위가 과도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제2의 한진해운 파산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적선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항만 근로자의 대량 실직사태나 각종 항만 부대 산업이 붕괴하는 등의 부정적 연쇄효과도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도 지난달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공정위 주장대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해운산업 재건정책에 정면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양창호 인천대 명예교수는 “한국 해운업계가 대규모 과징금으로 입지가 축소되면 동남아 항로에서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다른 아시아 운송사가 물량을 차지하고, 부산항은 동남아 물동량 기준 지역 항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업계의 관행과 산업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판단”이라며 “예를 들어 운임을 100원 올리기로 하고 신고한 뒤 한 번에 100원을 올리지 않고 10원씩 올린 것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계자는 또 “과징금을 내려고 배를 팔아야 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털어놨다.

해양 정책을 추진하는 해양수산부는 업계와 공정위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해수부는 지난달 29일 해운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경기 회복으로 물동량이 늘어나는 흐름에 발맞춰 국내 선사에 수조 원 규모의 정책 금융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공정위 전원회의(법원의 재판에 해당)에서 업계 상황과 정부의 지원 방침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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