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윤석열 "입당 마음 굳히고 밀당? 날 모르고 하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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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드 7장 중 4장만 보여주고 3장은 가리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입당 문제와 관련해 지난 29일 이런 비유를 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고 윤 전 총장 측 관계자가 30일 전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정치철학 면에서 국민의힘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 그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 “시기의 문제일 뿐 입당은 정해진 수순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자, 윤 전 총장이 지인에게 답하면서 든 예시였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내가 입당하기로 마음을 굳혔으면서 지금 패(카드) 일부만 보여주는 식으로 거래,밀당(밀고 당기기)하려 한다고 잘못 받아들이는 분이 많다.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 부름으로 여기까지 온 만큼 국민이 가라는 방향에 대해 경청하는 절차를 밟은 후 정치 경로를 정하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민심 경청은 입당을 전제한 요식 행위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카드놀이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측근 인사는 "민심 청취를 여야 경선판이 달아오르는 동안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는 시간벌기 전략으로 쓴다거나, 장외 중립 세력을 규합해 몸값을 높이겠다는 계산으로 보는 것 역시 정치권의 해석일 뿐 윤 전 총장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이런 입장에도 정치권에선 그의 정치적 행선지가 국민의힘이 될 것이란 예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의 최근 발언과 행보를 보면 국민의힘과의 접점이 꽤 많기 때문이다.

전날 그의 대선 출마장에는 국민의힘 의원이 24명이나 왔다. 윤 전 총장은 출마 선언을 통해 “함께 힘을 모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다”고 했고, 야권 통합 구상과 관련한 질문에는 “국민께 혼선을 주고 불안감을 갖게는 절대 안 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언론사 행사장에서 만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도 “가까운 시일 내에 뵙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이 한 달가량 민생 탐방에 집중한 후 당초 총장 임기 만료일이었던 7월 24일을 기점으로 입당을 결심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전망 시기도 제기된다.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민 목소리 경청에 수개월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7월 초부터 한 달 여정도 의견을 들으면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30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30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한편 윤 전 총장은 이날 대선 출마선언 후 첫날 일정으로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회식에 참석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인사를 나눴다.

이어 윤 전 총장은 여의도 국회 소통관을 찾아 출입 기자들과 일일이 주먹 인사를 했다. 이어 잠시 기자들 앞에 서서 “한국 정치의 생생한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저 윤석열, 이제 정치에 첫발을 들였는데 여러분의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때론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충청 지역 언론사 부스를 들른 자리에서는 “조상이 500년 넘게 충남에서 사셨으니 저의 피는 충남의 피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도 했다.

이날 저녁에는 SBS·KBS와 잇달아 인터뷰했다. 이른바 'X파일'과 관련해 법적 대응 여부를 묻자 그는 “의뢰한다고 수사하겠나.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현실을 다 봤지 않으냐”라면서도 "의미는 없지만 필요하면 법적 조치도 하고, 의혹 중에 합당한 근거가 있는 건 팩트를 설명하겠다"고 답했다. 처가나 부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처가와 악연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진영과 손을 잡고 8~9년을 계속 사이버상으로 공격했다. 공직에 있으면서 수도 없이 검증받았고, 대부분은 (문제 될 게 없는 것으로) 드러났던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해선 "언론에 계속 보도되는데, 이걸 수사 안 할 경우 국민이 국가의 법과 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말했고, 대선에 뛰어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선 "국민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무리한 일을 거듭하다 법무부 장관도 그만두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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