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법대 나와야 명함 내민다? 내년 3·9 대선 흥미로운 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법대를 나와야 대통령 후보 명함이라도 팔 수 있는 걸까.

내년 3·9 대통령 선거를 8개월여 앞두고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냐고 묻는 여론조사에서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석열(32.3%)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22.8%) 경기지사는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이낙연(8.4%)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4.1%), 추미애(3.9%) 전 법무부 장관, 최재형(3.6%) 감사원장의 순서였다.

JTBC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21일 발표한 조사에선 윤석열(32%) 전 검찰총장, 이재명(29.3%) 경기지사, 이낙연(11.5%)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4.4%) 국민의힘 의원, 추미애(3.9%) 전 법무부 장관, 최재형(3.7%) 감사원장 순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선 여론조사에서 법대 나온 후보들 상위권 위치 

두 조사의 공통점은 상위권이 모두 법대를 나온 정치인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추미애 전 장관과 이재명 지사는 각각 한양대 법대와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고 윤석열 전 총장과 이낙연 전 대표, 최재형 원장은 서울대 법대, 홍준표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72학번인 홍 의원의 엄밀한 학부 전공은 행정학이다. 하지만 행정학과가 정경대학이 아닌 법과대학에 속했던 시절 대학을 다녔고, 국회 홈페이지 국회의원 소개란에도 ‘고려대 법과대학 졸업’이라고 적혀 있다.)

언론인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를 빼면 이들은 모두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 판사(추미애·최재형), 검사(윤석열·홍준표), 변호사(이재명·오세훈) 등 이른바 ‘사(士)’자 돌림이다. 이외에도 정세균 전 총리(고려대 법대), 이광재 전 강원지사(연세대 법대), 원희룡 제주지사(서울대 법대), 황교안 전 총리(성균관대 법대)도 법대 출신이다. 웬만한 대선 후보는 죄다 법대 출신인 셈이다.

여론조사 엔트리에 들어간 대선 주자 가운데 비법대 출신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서울대 경제학),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서울대 의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성균관대 사회학) 정도에 불과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후보군에 이처럼 법대 출신이 많은 것은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최재형(오른쪽) 감사원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최재형(오른쪽) 감사원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원래 정치권에선 법조인 출신이 강세를 보이는 전통이 있다. 국회의 역할이 법을 만드는 일인 만큼 법률 전문 지식이 입법 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법조인 출신은 46명으로 15.3%에 달했다. 20대 국회의 법조인 출신은 49명(16.3%)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법조인 강세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15대 대선 이후 5번의 대선에서 2007년을 제외하고는 당선자 또는 2위 낙선자에 항상 법조인 출신이 포함됐다. 15·16대 대선의 이회창 후보, 18대 대선의 문재인 후보가 그들이다. 97년 이후 17대를 빼면 1·2당의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법조인이었단 얘기다. 내년 대선은 1·2당의 후보 모두가 법조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왜 그런 걸까.

원래 민주주의를 채택한 많은 나라에서 법조인 출신이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조 바이든 현직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4명의 미국 대통령 중 판사, 변호사, 검찰총장 등의 법조인 경력을 갖춘 사람은 6명에 달한다.

변호사 자격증이 가져다 주는 생계 안정 효과도 영향을 끼친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일반 직장은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내는데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변호사는 낙선을 하더라도 다시 변호사 개업을 하는 데 아무 부담이 없다. 총선 때만 되면 ‘율사당(律士黨)’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도 직업적 특성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사정기관 갈등 속에 법조인 주자 양산 분석도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사정기관을 둘러싼 권력 갈등이 워낙 많았고, 이게 여야의 대선 후보군(추미애·윤석열·최재형)을 양산한 계기가 된 점도 법조인 대선 후보가 유달리 많아진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