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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베꼈다" 수업받다 극단선택 여고생…반성문 앞뒷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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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양이 남긴 반성문. 사진 유족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양이 남긴 반성문. 사진 유족

“저는 이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저에게 주신 기회를 모두 다 썼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실망하신 게 많겠지만 죄송합니다.”

[사건추적] #부정행위 의심 받은 안동 여고생, 극단적 선택

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글이다. 이 학생은 1교시 영어 수업에서 쪽지시험을 치다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받고 반성문을 썼다.

하지만 반성문 뒷면에는 자신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어로 적힌 문장과 함께 “세 문장이었고 수행평가지(답안지)에는 이 문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0점 처리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상반된 내용의 반성문. 전후 사정을 모른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 학생이 수업 도중 학교를 빠져나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을까.

14일 유족과 경북교육청 등에 따르면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은 10일 오전 영어 수업 때 수행평가 쪽지시험을 봤다. 유명 팝송의 감상문을 세 문장의 영어로 적어내는 시험이었다. 학생들이 답을 쓰던 중 담당 교사는 A양의 책상 서랍 안에서 영어로 된 문장이 적힌 쪽지를 발견했고 이를 커닝한 것으로 의심했다.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양이 남긴 반성문. 사진 유족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양이 남긴 반성문. 사진 유족

A양은 2교시 수업이 시작됐지만, 교무실 별도 공간에서 반성문을 써야했다. 반성문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과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상반된 내용의 글을 적었다. 교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A양은 학교를 빠져나갔다.

한 학생이 학교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본 경비원은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A양은 “문구점에 다녀오겠다”고 하며 교문을 통과했다. 오전 9시40분쯤 학교를 빠져나간 A양은 약 5분 뒤 인근 아파트로 올라가 뛰어내렸다.

유족 “교사가 해명 안 믿어…모욕감에 극단 선택했다”

유족들은 담당 교사가 A양의 해명을 믿지 않고 부정행위로 단정해 반성문까지 쓰게 해 A양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붙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A양 유족은 “수행평가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교사로부터 부정행위를 했다는 지적과 함께 반성문을 작성하도록 강요받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음으로써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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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A양 유족은 “중간고사에서 전체 6등을 할 정도로 우등생인데 부정행위자로 몰리고 해명할 기회가 없자 억울한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며 “관계 기관의 철저한 조사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경북교육청 측은 14일 대책반을 꾸려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A양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닷새가 지난 시점이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한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하고 있고 경찰에도 수사의뢰를 한 상태”라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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