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점수만으로 못 가는 미 대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년 전 미국 뉴욕의 한 명문고에서 「전과목 A」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고3 교포 정모군 (20)은 자신만만하게 하버드대 의대에 입시 원서를 냈다.
대학 진학을 가늠하는 학업 적성 검사 (SAT)에서도 최우수권에 든 정군과 아버지 (46) 는 「합격이야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합격 통지서만 기다렸다.
이민 3년만에 조그만 무역상을 차려 웬만큼 자리를 잡은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세계의 명문인 하버드대에 들어가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보름 후 학교측에서 보낸 통지서는 합격 아닌 불합격 통지서였다.
『뭐가 잘못돼도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니야. 「전과목 성적 A」인 수재가, 그것도 전 미국의 학업 적성 검사 시험에서 최우수였는데 불합격이라니…』
학력 고사 점수로만 명문대 입학이 결정되는 한국 대입 제도가 몸에 밴 정군의 아버지로서는 기가 막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읽고 싶은 소설책 한 권도 읽지 않고 점수 벌레가 되어온 정군 또한 허탈감에 빠졌다.
『분명 학교측의 착오임에 틀림없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정군의 아버지는 받아 쥔 불합격 통지서를 갖고 곧장 하버드대로 달려가 입시 관리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닙니까』 다소 흥분된 정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불합격 통지서를 불쑥 내밀며 따졌다.
그러자 하버드대 입시 관리 위원장은 『아주 우수한 학생을 우리 학교에 지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정중히 맞은 뒤 정군의 고교 내신서를 펴 보이며 불합격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 보십시오. 정군이 고교 3년간 한번도 헌혈을 하지 않았군요. 또 친구들과 사회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정군의 고교 내신서 봉사 활동란은 빈칸이었다. 뿐만 아니라 8절지 24장으로 된 내신서에는 정군이 음악 감상을 좋아한다거나 다양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점수 공부만 했을 뿐이었다.
『고교 3년간 헌혈·봉사 활동을 한번도 안한 학생이 어떻게 봉사직의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입시 관리 위원장은 의사가 되려면 학과 성적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의사로서의 적성과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 6년간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면 여러 직종의 환자를 대해야하므로 오락·취미 등 다양한 생활 지식이 필요한데 정군은 이마저도 전무하기 때문에 불합격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고교 교육을 교과 성적으로만 보지 말고 인성과 적성을 바탕으로 인격 형성이 먼저 평가돼야 올바른 학교 교육이며 개인의 잠재력을 키운다는 설명까지 들은 것이다.
창의·자주적인 시민 의식을 쌓은 뒤 학문이 뒤따라야 미래 지향적인 인재를 기른다는 교육의 본질을 새삼 느낀 정군의 아버지는 점수의 굴레 속에서 공부만 잘 하는 바보 학생을 만드는 한국의 학교 교육이 얼마나 잘못 돼 있는가를 깨달았다.
최근 사업차 한국에 들른 정씨는 『많은 교포들이 한국에서 점수 교육을 받은 까닭에 미국에 와서까지 자녀들에게 한국식 입시 위주의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고 했다.
선진 외국의 고교 내신은 3년 동안 학생 개개인의 활동·적성 등을 빈틈없이 작성한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으로 인정된다. 대학 측은 이 내신서로 학교별 상대 평가제를 활용,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자료로 삼고 교과 성적은 기본 능력만 본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내신서는 성적순의 등급을 적은 종이 (?) 1장과 출결 사항 등을 기록한 생활 기록부가 첨부될 뿐 대입은 학력 고사 점수로 결정된다. 내신 성적도 최저∼최고 10등급에 18점 차이며 반영률 30%도 사정 총점에 불과 3.7%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신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고 교사를 신뢰하지 못한 채 급우애와 질문마저 없는 교실이 된 현실은 문교부의 졸속 정책에서 비롯됐다.
내신제에 대한 사전 연구 실험 없이 「대입병」의 극약 처방식으로 선진국 제도를 도입한 것이 「성적순」의 학교 교육에 또 하나의 점수 걸림돌로 변질되고 말았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춘 인재 양성·전인 교육을 걸머진 고교 내신제가 이렇듯 순기능을 잃고 역기능 속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성적 서열주의가 대학을 서열화하고 학문과 학과를 서열화하며 마침내 사람까지 서열화 하는 우리 교육과 사회.
이명현 서울대 교수는 『어설픈 문제 몇개를 더 외어 점수로 서열화하는 우리 교육은 이념 따로 현실 따로의 교육 철학 부재에 헤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력 고사 몇점 차이로 어떻게 대학 진학의 성패를 가리고 개인의 잠재 능력을 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따라 「입시 점수병」은 국민학교는 「대입 예비기」, 중학교는 「대입 훈련기」, 고교는 「대입 실전기」, 대학은 「위로 휴가기」라는 참담한 말까지 낳았다.
내신 성적. 교사가 봐주려면 봐줄 수 있는 「판촉 점수」가 아니냐는 불신의 대상이 된 채 학교 교육이 입시의 시작이고 끝이 되지 못해 「내신」이 설자리를 잃은 점수 위주의 무너진 고교 교육. 「전과목 A」 재미 교포 수재 학생의 하버드대 낙방은 우리 학교 교육과 대입 제도에 뼈를 깎아야 할 교훈을 남긴다. <탁경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