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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나눠주는 정권과 사법부의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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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지난해 4·15 총선 이후 제기된 선거(당선)무효 소송은 120여건이나 된다. 역대 가장 많은 소송이 제기된 선거였다. 대부분 “선관위가 위법행위를 했다”라거나 “투표지 분류기 오류 등으로 당선자가 뒤바뀌었으니 재검표해달라”는 내용이다.

총선이 끝난 지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결론이 난 소송은 없다. 선거 관련 소송이 이렇게 오랫동안 판결이 나지 않는 것도 사상 처음이다. 공직선거법 제225조에 따르면 대법원 단심으로 진행되는 선거 소송은 접수한 지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대법원이 법을 어긴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전에는 또 다른 취지의 선거무효 소송이 있었다. 유성구에서 야당 후보로 나섰던 장동혁·김소연 변호사는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 등 현금을 선거 직전에 급하게 나눠준 것은 금권·관권 선거”라며 판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선거 부정 중 유권자 의사를 가장 왜곡시키는 행위가 금권선거”라며 “국가나 자치단체가 재정지원이라는 방법으로 유권자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금권선거”라고 했다.

지난해 4월 대전시청에 마련된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접수 상황실 모습. [뉴스1]

지난해 4월 대전시청에 마련된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접수 상황실 모습. [뉴스1]

대전시는 지난해 투표 이틀 전인 4월 13일 대전형 긴급재난 생계지원금(30~70만원)을 줬다. 아동양육한시지원금도 주로 투표일 직전에 지급됐다. 이는 정부가 7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에 나눠준 돌봄쿠폰(40만원)을 말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하필이면 돈을 투표일 직전에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투표 바로 전날 동사무소에서 현금을 주며 “내일 꼭 투표하세요”라고 하면 금권·관권 선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대법원은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소송한 지 1년 1개월 만인 지난 7일 원고 측에 ‘오는 7월 8일 변론기일이 잡혔으니 출석해달라’고 통보한 게 첫 반응이다. 법조계에서는 “사실관계가 복잡하지 않아 금방 결론이 날 사안”이라며 “뒤늦게 변론 기일을 잡을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장동혁 변호사는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고 대법원이 어떻게 설명할지 듣고 싶어 소송을 낸 것”이라고 했다.

집권 세력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현금을 뿌릴 조짐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올 추석을 전후로 전 국민에게 위로금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현금 마련을 위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비율을 60%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한국형 재정준칙 시행령’도 손볼 태세다. 내년 대선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돈을 뿌릴 환경도 좋다. 정권의 ‘재정 폭주’에 사법부도 ‘재판 지연’으로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이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모습이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