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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죽을때까지 왜 아무도 안 도왔나" 女중사 부모의 분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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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쁜 딸.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현충일인 6일 오전 9시,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내 분향소.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모 중사의 어머니는 딸의 사진을 품에 끌어안고 주저앉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분향소에는 이 중사의 영정과 살아있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 4장이 함께 놓여 있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했던 이 중사를 위한 고양이 인형도 있었다.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인 남성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당한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영정을 유가족이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인 남성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당한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영정을 유가족이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딸의 고통 다들 외면”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뉴스1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뉴스1

부모는 딸의 생전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된 현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딸의 사진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내 딸 사진이 왜 저렇게 있어야 하나. 저렇게 예쁜 딸이 왜 저런 (국화) 꽃에 둘러싸여 있나.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다”고 했다.

부모에게 이 중사는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군인을 꿈꿔 공군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할 만큼 장래에 대한 의지도 뚜렷했다. 아버지 이씨는 “딸이 고등학교 때 항공 관련 전문기술을 배웠다”며 “고교 졸업과 동시에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하는 등 미래가 창창했고 앞길 걱정이 없던 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품어온 이 중사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지난 3월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뒤 두 달여 만인 지난달 22일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국방부는 합동수사단을 꾸려 수사 중이다. 이씨는 “‘화가 난다’ ‘억울하다’는 말로는 딸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 마음은 절대 어떤 말도 대신할 수 없다”며 “딸이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중사는 평소 온화한 성품 등으로 주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게 부모의 주장이다. 이씨는 “어르신 잔치에 가면 어깨동무를 먼저 하는 살가운 성격이었다. 춤도 추고 분위기를 띄우던 아이였다”고 했다. 그는 “배려가 넘쳤던 성격이었고, 그저 착하고 부모 속을 썩인 적 없는 그런 딸이었다”고 말했다.

“정치인 조화·조문 다 무슨 소용”  

문재인 대통령이 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욱 국방부 장관.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욱 국방부 장관. 사진 청와대

아버지는 정치권에서 잇따라 보내는 조화를 보며 씁쓸한 심경을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도 지난 5일 분향소에 도착했다. 이씨는 “저런 조화들 다 필요 없다. 내 딸이 죽었는데 받아 봤자다”라며 “‘내 자식 살려내라’라는 대답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 문 대통령이 분향소를 찾았을 때 이씨는 “딸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군에 있는 또 다른 많은 딸들을 걱정했다. “군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다신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다. 이씨는 “딸의 억울한 죽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 중사의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돼있다. 유가족은 이 중사의 죽음 등에 대한 경위가 수사로 밝혀질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국군수도병원 분향소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반 조문객의 조문을 받는다. “순수한 추모의 마음과 조문만 감사히 받겠다.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게 유가족 입장이다. 유가족 측은 “장례가 언제쯤 치러질지, 분향소를 며칠 동안 운영할지 등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분향소에는 이 중사를 추모하려는 시민 발길이 잇따랐다.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은 “뉴스를 접하고 너무 충격받아서 들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성남=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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