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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사기→감방→연봉10억" 분통…사기에 꽂힌 與박재호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사기공화국’이란 명제에 꽂혀있다. 21대 국회에서 내놓은 1호 법안도 ‘다중(多衆)사기범죄 피해방지법’이다. 지난 4일에는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입법토론회를 열고 “사기가 진짜 남는 장사가 되고 있다. 처벌수위가 낮아 사기꾼들이 판을 친다”고 했다.

[여의도 who&why]

“살인보다 중형 때려야 자본주의”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박 의원은 토론회 시작 직후 환영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사기공화국이라 한다. 이득액이 50억 원이 돼야 징역 5년이 선고되는데, 50억 원 사기치고 5년 (감옥) 살고 나면 연봉 10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사기를 그렇게 많이 당했는데 고발한 사람만 피해를 본다. 사기꾼은 계속 사기를 치고 그 돈으로 변호사를 사서 나와서 또 사기를 친다”고 한탄했다. 박 의원은 “외국에는 500년도 살고 200년도 살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기는 10년 이하, 유사수신(인허가 없이 불특정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은 5년 이하”라며 “무기징역까지 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살인보다 더 중형을 할 수 있어야 자본주의”라는 게 박 의원의 소신이다.

실제 국내 사기범죄 발생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0년 20만5913건이었던 사기 사건 발생건수는 2019년 31만3593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2017년(24만1642건), 2018년(27만8566건), 2019년(31만3593건) 사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절도 사건이 2010년(26만8007건)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19년 18만7629건까지 줄어든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현행법상 다중 사기 범죄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보이스피싱), 유사수신행위법(금융 다단계 사기), 형법(사기) 등 범죄 유형별로 각각 규제하고 있다. 이에 피해자 구제 신청도 제각각이다. 신종·변종 범죄의 경우 근거 규정이 없어 처벌하기도 까다롭다. 박 의원이 낸 법안은 각종 신종범죄 유형을 ‘다중사기범죄’로 규정해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한편, 처벌 수위를 강화(50억원 이상 시 무기 또는 5년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50억원 이상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신상정보도 공개토록 했다.

“사기꾼 떵떵 거리는데, 피해자는 자살한다”

지난해 12월 MBI 사기사건 피해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박재호 의원. 유튜브 캡처

지난해 12월 MBI 사기사건 피해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박재호 의원. 유튜브 캡처

박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첫 배지를 달기 전부터 “국회의원이 되면 사기 사건 처벌은 꼭 강화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임에도 정무위 법안을 대표발의하며 입법에 총대를 멘 것도 개인적 소신 때문이라는 게 박 의원 측 설명이다. 특히 지역구(부산 남을)에서 사기사건 피해자들을 만나며 확신이 굳어졌다고 박 의원은 설명했다.

어떤 계기로 사기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나
부산 남구 우암동ㆍ감만동에 피난민 출신 등 어려운 어르신들이 모여사는 산 동네가 있다. 내가 거기 올라가면 매번 울면서 내려왔다. 형편도 어려운 분들이 다단계 사기, 보이스피싱 당해서 100만~200만원씩 뜯겨 어쩔 줄 모르고 그러더라.
20대 국회에서도 사기 처벌 강화 입법을 시도했던데
법 체계에 안맞다고 해서 마무리가 안 됐다. 정치가 이런 걸 고치라고 있는 거 아니냐는 게 내 주장이다. 사기꾼들은 떵떵거리고 사는데 피해자들은 자살하고 난리도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건 사람 죽이는 거보다 더 엄해야 된다.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MBI라는 회사의 다단계 투자 사기 의혹 관련 피해자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통합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MBI라는 회사의 다단계 투자 사기 의혹 관련 피해자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통합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박 의원이 지난해 8월 법안을 발의한 뒤엔 피해자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8만여 명이 5조원 규모의 투자사기 손실을 입은 MBI 금융사기사건 피해자들이 4일 토론회를 찾아 현장을 지켜봤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 의원실로 손 편지 100여통도 보냈다.

지금까지는 공론화 부족 등의 이유로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박 의원이 “당론이 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토론회에 참석해 “제가 발의한 법 이상으로 법을 통과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무위 법안이 여럿 밀려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도 “김병욱 의원이 절반 이상은 도와주셔야 입법이 성사된다. 관심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17대 총선부터 꾸준히 부산 남을에 출마했다. 3차례 낙선 끝에 20대 총선에서 서용교 전 새누리당 의원을 꺾고 처음 배지를 달았다. 지난해 총선에선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눌렀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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