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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압력에 기름부은 기름값…국제유가 2년만에 70달러 돌파

중앙일보

입력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에 기름값이 기름을 부었다. 산유국의 '공급 확대' 신호에도 국제 유가가 2년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어섰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 경제 회복이 본격화하면 석유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에 이어 국제 유가까지 오르며 원자재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가 리터당 1788원에 판매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가 리터당 1788원에 판매되고 있다. [뉴스1]

1일(현지시간) 브렌트유 8월물은 전날보다 1.34% 오른 배럴당 70.25달러에 거래됐다. 장중 한때 71.3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브렌트유가 70달러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19년 5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물도 전날보다 2.11% 오른 배럴당 67.72달러를 기록해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국제 유가 오름세 속 국내 기름값도 올랐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국내 휘발윳값(전국평균)도 리터당 1555.6원으로 전날보다 1.39원 올랐다.

산유국이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탄력을 받은 유가를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는 기존에 합의한 감산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며 산유량을 늘리는 데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하루 100만 배럴씩 자체 감산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며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CNBC에 따르면 이렇게 되면 6월에는 하루에 6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고 7월에는 하루 84만 배럴의 증산이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달부터 감산이 시작된 만큼 7월까지 이 추세가 이어지면 하루 평균 21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 유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제 유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처럼 공급이 늘어나는 데도 가격이 오르는 것은 수요 증가가 더 가파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우드 매킨지의 부사장 앤 루이스 히틀은 “OPEC+의 생산량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수요증가 속도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복 여행’ 시작…美 연휴 기름 수요↑

폭증하는 원유 수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휘발유 가격 분석업체에 가스버디에 따르면 미국의 메모리얼(현충일) 연휴였던 지난달 30일 미국 휘발유 수요는 2019년 여름 이후 모든 일요일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지난달 28~31일 미국의 항공 여행객 수는 하루 평균 178만 명을 기록해 코로나19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인들이 지난달 31일 메모리얼(현충일) 연휴를 맞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 몰려든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인들이 지난달 31일 메모리얼(현충일) 연휴를 맞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 몰려든 모습. [AFP=연합뉴스]

원자재 가격 강세로 인해 인플레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최근 목재 가격은 1년 새 4배가량 급등했고,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는 구리는 지난달 초 15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상승곡선을 그리는 유가가 커지는 인플레 압력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경제 활동에 필수 요소인 국제 유가 상승이 소비재와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슈앙 딩 이코노미스트는 “원가 비용 압력이 지속하면 더 많은 중국 제조기업들이 생산을 멈추거나 국내외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겨야 하는데,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각국의 소비자물가는 이미 들썩이고 있다.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2.6% 오르며 9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의 4월 CPI는 1년 전보다 4.2% 상승하며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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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흐름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의 변이 확산 가능성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에 따른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 가능성이다. 하루 평균 150만 배럴을 생산하는 이란이 국제 원유 시장에 복귀하면 유가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하반기 경제 회복과 원유 수요 증가에 긍정적 추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지속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적이고 변이바이러스는 여전한 위협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브자네 쉘드롭 SEB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수요 회복과 소강상태에 빠져 있는 미국 셰일 업계, OPEC+등의 산유량 통제 등으로 인해 국제 유가의 강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며 손실 구간을 벗어난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에 나서고 주요 산유국이 증산에 나서면 유가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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