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성윤 기소 앞장선 오인서 수원고검장 사의…"조남관에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지난 3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지난 3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관련 사건을 총괄 지휘해 온 오인서(55·사법연수원 23기) 수원고검장이 31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선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에 대한 기소 판단을 미루는 대검찰청 수뇌부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6월 대검 검사급(고검장·검사장) 검찰 인사를 앞두고 조상철(52·23기) 서울고검장에 이어 검찰 고위직 중 두 번째 사의 표명이다.

오인서 "자리 정리할 때…소신 지킨 대다수 동료·후배에 경의"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오 고검장은 이 비서관이 불법 출금 전반에 관여한 핵심 피의자라는 수사팀의 의견에 따라 이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결재한 뒤 고검장 직을 내려놓는 방안을 고심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이 지난 12일 이 비서관을 기소하겠다는 수사팀의 보고를 받고도 2주 넘게 판단을 미루고 있는 데다 차기 검찰총장의 임명이 임박하자 이날 항의의 뜻으로 사의를 밝혔다. 오 고검장은 이날 반가를 냈다고 한다.

수사팀은 이 비서관과 차 본부장, 이 검사 간 통화 기록과 진술 등을 토대로 이 비서관이 이들과 공모공동정범 관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사팀은 차 본부장과 이 검사의 공소장에서도 이 비서관이 '출금 사건을 주도한 주범'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오 고검장은 지난 1월 문홍성(53·26기) 수원지검장이 이 사건의 수사 지휘를 회피하면서 불법 출금 사건과 안양지청의 2019년 6월 1차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 사건까지 총괄 지휘했다. 오 고검장은 검찰 내부에서 이번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수사팀이 불법 출금을 실행한 차규근(53·불구속 기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44·불구속기소)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 그리고 1차 수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를 받는 이성윤 (59·23기) 서울중앙지검장을 기소할 때마다 오 고검장이 전면에 나서 대검을 설득했다.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투기의혹 단속 및 수사상황 점검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투기의혹 단속 및 수사상황 점검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팀 "2차 공준기일 전 이광철 기소해 사건 병합해야"

수사팀은 늦어도 차 본부장과 이 검사의 2차 공판준비기일인 6월 15일까지 이 비서관을 재판에 넘겨 사건병합 신청을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이규원 검사 허위보고서 작성 사건'과 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이규원 검사·이광철 비서관 등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도 내용이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역시 사건을 병합해야 한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도 수사팀과 비슷한 시각을 내비쳤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선일 부장판사)가 2차 공판준비기일까지 5주나 시간을 줘 사실상 사건 처리기한을 정해준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수사팀 해체 우려되는 데 김오수에 '공' 넘기는 조남관

하지만 대검은 수원지검 수사팀을 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 비서관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다. 수사팀이 이 비서관을 기소해 사건을 병합하기 위해서는 이 지검장 기소 때와 마찬가지로 대검이 수원지검 수사팀을 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로 발령해야 한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팀의 판단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내부 의사 조율 과정에 있다"며 "사건을 뭉개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 보고서 재송부 시한인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 보고서 재송부 시한인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김오수 후보자의 정식 취임 이후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김 후보자 역시 차 본부장의 출금 이행을 승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검찰총장에 취임해도 이 사건 지휘는 회피할 방침이다. 결국 대검검사급 인사를 통해 차기 대검 차장검사가 결정되고 구체적 사건 검토를 한 뒤에야 최종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주요 사건 수사팀이 공중분해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점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김 후보자 임명 이후 ‘형사부의 직접수사 폐지’ 등 검찰 조직 개편과 함께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예고했다.

오 고검장의 사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대검 수뇌부에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 고검장은 사의 소식이 알려지자 "오늘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리를 정리할 때라고 판단했다"며 "소신을 지키며 책임감 있게 일 해온 대다수 동료, 후배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이 이미 '인사 적체'라며 모욕 인사를 예고한 상황에서 오 고검장이 수원지검 수사팀을 위해 잘 버텨준 것 같다"며 "사감 없이 원칙적으로 사건을 처리해왔던 선배 검사가 검찰을 떠나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