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세진 美 '탄소중립' 압박, 文 "올해 안에…" 머뭇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5월 30일∼31일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서울 정상회의를 주최함으로써 포용적이고 국제적인 녹색 회복 및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에 기여하기를 기대하였다.”

“한ㆍ미 양국은 2050년 이내 글로벌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 및 2020년대 내 온실가스 배출량 대폭 감축 달성을 위해 국제 공적 금융 지원을 이에 부합시켜 나갈 것이다.”

25일 정부가 발표한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일부다. ‘탄소 중립(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과 관련한 양국의 협력을 강조한 내용이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국제사회에 연일 탄소 중립을 압박하는 바이든 정부와 달리 한국 정부의 수동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캡처.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에 화상으로 열린 세계기후정상회의에서 구체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추가 상향해 올해 안에 UN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4.4% 감축한다는 내용의 NDC를 UN에 제출한 뒤 “선진국 대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지 않자 뒷말이 나왔다.

이와 달리 경쟁하듯 구체적으로, 공격적인 선언을 쏟아낸 선진국 정상과 대비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50~52%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목표(2025년까지 26~28% 감축)에서 한 발 더 치고 나갔다. 영국은 2035년까지 78% 감축(기존 2030년까지 68% 감축), 일본은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46% 감축(기존 26% 감축)한다며 목표를 올려잡았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각국 정상은 설령 장밋빛 예측을 쏟아냈다고 하더라도 경쟁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했다”며 “문 대통령 발언만 보면 탄소 중립이란 공동의 목표를 두고 한국만 나 홀로 역주행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머뭇하는 데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11위, 탄소배출량 9위로 탄소 중립과 관련한 국제사회 의무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주요 유럽 국가와 달리 철강ㆍ석유화학ㆍ반도체ㆍ전기ㆍ전자 등 제조업 비중이 높아 짧은 시간 내 의무를 지키기 어렵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403곳을 설문한 결과 탄소 중립에 대해 57.3%가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42.7%가 “(탄소 중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의에서 “석탄 화력발전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을 고려하고 적절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내적으로도 관련 산업과 기업, 일자리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상황은 어렵지만, 탄소 중립에 대한 요구가 거센데 ‘속도 조절’을 하겠다며 마냥 뒤로 미루기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을 장기 대책으로 추진하되 피해가 불가피한 기업을 위한 대책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탄소 중립을 하지 않겠다면 모를까, 하겠다면 원자력 발전의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ㆍ유럽은 오랜 시간 논의한 끝에 사회적으로 합의한 탄소 중립을 추진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며 “탄소 중립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의무를 국민ㆍ기업에 정확히 밝히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030년 NDC를 달성하려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기존 전망 대비 약 2~4%까지 하락하는 등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며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국민도 소비 절감 등을 통해 부담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