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政經유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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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치와 경제가 병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현상'을 흔히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고 한다. 여기서 착(着)은 '저'로 많이 알려진 착(著)자의 속자로 중국 은(殷)나라 때의 술독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술독은 다리가 없어 늘 바닥이 땅에 붙어 있었다. 때문에 여기에 술을 채우면 힘센 사람도 들기가 어려웠다.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딱 붙어 있는 著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달라붙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着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게 됐다.

정경유착에서 유(癒)는 '병이 나았다'는 뜻이다. 유착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병이 나으면서 달라붙는다'는 기묘한 말이 된다. '불편함이 (혹은 불편한 관계가)해소돼 병적인 결합을 하는 것'그것이 바로 유착이며 정치와 경제가 이런 병적인 결합을 하는 것이 바로 정경유착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정경유착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사마천(司馬遷)이 '천금(千金)을 모은 자는 군수와 상대하고 만금(萬金)을 모은 자는 천자(天子.황제)와 상대한다'는 명언을 남겼을까.

돈을 접착제처럼 사용해 권력과 융합하려는 정경유착, 혹은 반대로 권력을 접착제로 활용해 부와 이권을 챙기려는 정경유착. 때문에 정경유착이란 말의 의미와 범위, 보통사람들이 이 단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시대에 따라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

1960년대 초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되던 정경유착은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 언론은 한.일 국교정상화 후 '한.일 정경유착'이란 말을 자주 언급했다. 대일청구권자금과 엔(円)차관이 쏟아져 들어가는 한국시장을 놓고 일본 업계가 일본 정치계를 동원해 한국 정치계와 교섭, 한국 정부에서 이권을 따내는 현상을 꼬집었던 것이다. 여기서 정경유착의 본무대는 일본이고 주역은 일본 정치계와 경제계였다. 반면 한국의 정치계는 조역이 되고 경제계는 말석이 된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를 가능케 했던 금권정치와 파벌정치의 나쁜 폐습은 이렇게 해서 한국에 수입됐다.

SK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정치인과 경제인의 음습한 돈거래가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사태를 불러왔다. 이번 재신임을 계기로 군부독재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고질병으로 굳어진 정경유착의 실타래도 쾌도난마처럼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