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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말하던 트럼프와 달랐다… 文·바이든 '포괄 동맹'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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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한ㆍ미 정상회담을 놓고 양국의 외교가에선 “동맹 외교가 본 궤도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 6월에 열린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4년간 이어져 온 '비정상적 동맹 외교'가 비로소 정상화의 과정을 밟게됐다는 의미에서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회담은 형식과 의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는 많이 다르다. 회담 형식은 양 정상의 단독 회담에 이어 외교·안보 문제를 논의한 소인수 회담, 모든 현안이 논의된 확대 회담 순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36분간 문 대통령을 옆에 앉혀놓고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다. 특히 문 대통령의 마지막 답변 때는 통역을 듣지 않고 회견을 중단시키기도 하는 등 외교적 결례가 잦았다.

  의제 측면에서도 '돈 문제'가 주요 현안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는 달랐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논의한 테마는 한반도 문제를 비롯해 코로나 백신과 방역 문제,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등 양국간 관심 현안외에 기후환경과 미얀마 사태 등 민주주의 이슈, 원자력과 우주 탐사 등 글로벌 이슈가 총망라됐다.

문 대통령은 21일 94분간 이어진 단독, 소인수 회담을 마친 뒤 확대회담에 앞서 “세계는 미국의 복귀를 환영하며 그 어느 때 보다 미국의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더 나은 미국을 강조하며 공동과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우리 양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글로벌 현안에 대해 적극 협력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4년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오로지 북한만을 주장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인상 등 돈 문제에만 관심을 두면서 평행선을 달렸다”며 “문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외교에 대해 ‘변죽만 울렸다’고 말했던 배경엔 불완전했던 한·미 동맹 외교에 대한 반성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 국한됐던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를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의지를 피력해왔다.

20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서도 북한 문제에 앞서 백신 문제를 먼저 언급하며 “한ㆍ미 간의 대화가 한반도 평화는 물론 코로나 극복과 경제 회복, 기후변화 대응에 이르기까지 양국 협력을 더욱 깊게 하고, 전 세계의 연대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21일 정상회담 직전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한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책임동맹으로 코로나 극복과 자유민주주의적 국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여정에 늘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변화에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면서 함께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아이젠하워 행정동 발코니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아이젠하워 행정동 발코니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2년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외교통으로 불렸던 바이든 대통령 역시 문 대통령의 요청에 호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사일 지침 해제^트럼프 정부 시절의 남북, 북·미 합의 계승 등 그동안 한국이 요청해왔던 일부 사안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편으로는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요청했다. 양국 외교가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렸고, 대신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의 여러가지 숙제를 떠안게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회담 전후로 백신 허브로서의 한국의 역할이 논의된 데 대해서도 “미국으로선 동맹으로서의 한국의 역할과 전세계적인 책임 분담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4년간의 한ㆍ미 외교는 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어젠다에 의해 끌려왔지만, 이번 회담을 계기로 동맹국가 간의 어젠다가 복원됐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문 대통령도 그간 한ㆍ미 외교를 대북 정책의 종속변수로만 주로 봐왔는데, 이제는 북한 문제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 국가적 위상을 높일 기회로 동맹외교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한마디로 지난 4년간의 비정상적 외교가 정상화되고 있는 과정으로 이번 회담을 평가한다”며 “안보 일변도이던 기존의 동맹 체제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확장된 동맹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열린 확대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열린 확대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의 입장을 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20일 미 하원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며, 한ㆍ미 동맹은 외교안보의 근간”이라면서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협력 대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ㆍ미 동맹을 바탕으로 미ㆍ중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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