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1호, 원안위의 트집 "北이 장사정포 쏘면 어쩔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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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운영허가 심의가 진행중인 신한울 1호기 현장을 방문, 설비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원자력안전위원회 ]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운영허가 심의가 진행중인 신한울 1호기 현장을 방문, 설비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원자력안전위원회 ]

원자력 안전규제를 독립적으로 관리·담당하는 국무총리실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원자력발전소(원전) 운영 허가를 또다시 미뤘다. 원자력 전문 기관이 법규·기준에 따라 보고한 내용을 두고 원안위가 안전 기준을 문제 삼으면서 허가를 지연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0년 착공한 경상북도 울진군 신한울 1호기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8년 4월 상업운전이 계획된 원전이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허가가 지연했다. 지난해 3월 사실상 완공한 상태다(공정률 99%).

원안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4일까지 11차례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 관련 회의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심의가 지연하고 있다. 19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지난 14일 원안위 회의에서 항공기가 원전에 충돌할 가능성에 대해 보고했다.

기준 따라 계산했는데…“무조건 틀린 얘기”  

신한울 원전 1ㆍ2호기 모습.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신한울 원전 1ㆍ2호기 모습.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시설 등의 기술 기준에 관한 규칙 제8조에 따르면, 원자로 시설은 사고 영향을 조사·평가해야 한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안전 심사 지침과 미국 에너지부 기술 기준 등에 따라 발전소 주변 비상활주로나 군 항공기 훈련 지역 등을 고려해 항공기 충돌 재해도를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발전소 부지에 항공기가 추락할 확률은 이론적으로 1년에 2.47×10의 -7승 수준이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이처럼 미미한 확률을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조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실장이 “1000만년에 1번 정도 원전 부지에 비행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보고하자, A 원안위원은 “내가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 간다”며 “대단히 공허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A 원안위원은 “지금 항공기만 생각하는데 그러면 미사일은요?”라고 따졌다. 그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내려와서 쏴서 (원자력) 발전소를 깐다. 거기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돼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장사정포란 사거리 40㎞ 이상인 북한의 로켓포·자주포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국가 간 전쟁과 물리적 방호는 국방 차원에서 별개(로 진행하는 부분)”이라며 “원전 설계 요건과는 무관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A 원안위원은 “어떻게 원전을 설계하는데 전쟁이 나고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고려를 안 할 수가 있어요?”라며 “무조건 틀린 얘기니까 그 말씀은 하지 마세요”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원안위원은 원전의 홍수 대비 규정을 지적했다. 지난 50년간 홍수 피해의 최대치를 원전이 버틸 수 있도록 규정한 기준이 부적합하다는 주장이다. B 원안위원은 “50년 빈도가 너무 바람직하지 않다”며 “50년 빈도가 과연 타당한지 국내 기준도 검토해주시고, 해외 다른 국가의 사례도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원안위, 신고리 4호기는 미사일 대비 안 했는데 승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원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찬걸 울진군수(오른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원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찬걸 울진군수(오른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 설계 시 비행기·미사일·홍수를 대비해야 한다는 원안위원의 주장에 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원안위원이 기존 규정을 무시하고 자기 판단을 우선시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안위원은 규정을 충족하면 허가를 하는 역할인데, 현재 원안위원들은 ‘규정 자체가 틀렸다’고 주장한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규제는 공학과 법·행정 영역의 교집합으로, 지난 수십년간 규제하면서 축적된 지식이 ‘규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원안위원들이 개인적 주관으로 규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오만이자 독재”라고 비판했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 2019년 2월엔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를 결정했다. 당시 신고리 4호기 허가 땐 북한이 장사정포를 쏜다거나 항공기가 원전에 추락할 확률을 설계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또 홍수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규정 또한 동일하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안위가 당시 허가한 원전도 비행기·미사일·홍수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일관성도 없는 개인의 의견을 바탕으로 원전 운영 허가를 판단하는 원안위원의 행위는 어불성설이자 억지”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정부가 허가를 미루고 있는 신한울 1호기는 지난 2014년 12월 1일 운영 허가를 신청했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한 바라카 1호기 원전은 신한울 1호기보다 약 2년 늦은  2012년 7월 착공해 2015년 3월 운영허가를 신청했지만, 지난달 6일 상업운전에 돌입했다. 신한울 1호기와 바라카 1호기는 원자로 형태(노형·APR1400)가 동일하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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