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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단어 대신 '결혼 끝'…게이츠 부부, 졸혼인가 이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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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럴 때도 있었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왼쪽) 부부. 2006년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럴 때도 있었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왼쪽) 부부. 2006년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시각 4일 새벽 5시30께, 전 세계 외신이 긴급 속보를 앞다퉈 내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 발표 소식이었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가 직접 트위터에 공동 명의로 이혼 발표 성명을 내면서다. 27년을 함께 하며 자녀가 셋인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산가 부부의 이혼 발표에 전 세계가 갖는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다. 굳이 왜? 재산 분할은 어떻게?

①굳이 왜?

둘이 함께 발표한 공동 성명엔 이혼(divorce)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들은 대신 “우리는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결정 내렸다(a decision to end our marriage)”라는 표현을 택했다. 이 표현엔 이혼이 오랜 숙고의 결과이며 어느 일방의 외도와 같은 선명한 귀책 사유로 인한 급한 결정이 아니라는 주장이 녹아있다. 한국에서 최근 유행하는 말인 ‘졸혼(卒婚, 이혼은 하지 않지만 결혼생활을 졸업하고 각자 사는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관심이 쏟아질 게 분명한 이혼을 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들이 각자의 트위터로 발표한 성명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꽤나 많은 노력을 한 뒤, 우리는 우리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결정 내렸다. 지난 27년 동안, 우리는 세 명의 놀라운 아이들을 길렀고,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재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사명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공유해나갈 것이며, 재단의 일을 계속 함께 해나갈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의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커플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새로운 삶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는 지금, 우리의 가족에 대한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요청한다.”  

조짐은 있었다. 멀린다 게이츠가 자신의 결혼 전 성(姓)인 프렌치(French)를 붙여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라고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다. 트위터 계정 역시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다.

이 부부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범처럼 여겨져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업계에선 “공격적이고 잔인한 사업 방식”(로이터 통신)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1994년, MS에 입사한 멀린다와 결혼하면서 그는 자선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힌다. 결혼 전 MS로 거부를 쌓았으면서도 빌 게이츠는 기부나 자선 활동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고 AP통신은 3일 전했다. 그런 그가 멀린다를 만난 뒤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웠고, 기아 해결, 장학 사업 및 질병 백신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로이터는 3일 “빌 게이츠는 배우자를 만나면서 잔인한 사업가에서 존경받는 기업가로 변신했다”고 전했다. 결혼으로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뉘앙스다.

2011년 인도를 방문한 게이츠 부부. AFP=연합뉴스

2011년 인도를 방문한 게이츠 부부. AFP=연합뉴스

이혼으로 재단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들 부부가 현재까지 재단을 통해 쓴 자산 규모는 540억 달러(약 60조 5000억원)에 달한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 “재단 일은 함께 계속하겠다고는 밝혔으나 미래가 불투명한 게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②재산 분할은 어떻게?  

빌 게이츠의 자산은 경제전문지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1240억 달러로 추정된다. 결혼생활이 27년으로 장기간인데다, 기업과 재단을 함께 키워냈다는 점에서 멀린다 게이츠가 받을 금액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했기에 이에 따라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NYT는 3일 이들 부부의 결혼 당시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내용은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멀린다 개인 역시 상당한 자산가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그의 별도 자산은 7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의 파워있는 여성 중 5위를 했다. 그는 최근엔 남녀의 급여 평등 및 저개발국 소녀들의 교육에 더 힘을 쏟아왔다고 미국 abc 방송은 3일 전했다. 피보털 벤처스(Pivotal Ventures)라는 투자 및 인큐베이션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멀린다는 지난해엔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와 이혼한 맥켄지 스캇과 손잡고 3000만 달러 규모로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의 목적은 남녀의 평등한 급여를 실현하는 것이다. 멀린다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나와 빌은 동등한 파트너”라며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재산 분할 과정이 더 주목된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백악관에서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는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 부부. EPA=연합뉴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백악관에서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는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 부부. EPA=연합뉴스

③ 억만장자의 이혼  

게이츠 부부의 이혼으로 덩달아 다른 억만장자들의 이혼도 주목받고 있다. 포브스는 3일 위자료 규모가 가장 컸던 다섯 건의 이혼 사례를 전하면서 “빌 게이츠 부부가 이들 순위를 바꿀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1위는 단연 베조스와 스캇으로, 위자료가 350억 달러였다. 스캇은 이혼 덕에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자산을 보유한 여성이 됐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스캇은 부지런히 기부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 3월, 교사와 재혼했다.

현재까진 '가장 비싼 이혼'을 한 것으로 기록된 제프 베조스와 맥켄지 스캇. 2017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현재까진 '가장 비싼 이혼'을 한 것으로 기록된 제프 베조스와 맥켄지 스캇. 2017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엔 덜 알려졌지만 자산운용사 핌코의 창업자 부부의 이혼 역시 자주 회자된다. 빌 그로스와 수 그로스의 이혼으로, 13억 달러의 위자료로 일단락됐다. 이들의 이혼은 포브스 표현에 따르면 “엉망진창”이었는데, 부인이 이혼 소송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남편이 위자료를 계속 축소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현재는 각자 자선 재단을 운영 중이다.

자산가의 이혼은 많은 경우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디즈니의 공동 창업자의 아들인 로이 디즈니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못한 케이스다. 월트 디즈니의 형이자 디즈니를 공동 창업한 로이 디즈니의 아들(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인 그는 부인 패트리샤와 52년간의 결혼생활을 2007년에 끝냈는데, 6000억 달러의 위자료를 지불해야 했다. 이혼 바로 이듬해 그는 레슬리 드뫼즈라는 작가 겸 프로듀서와 결혼했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패트리샤는 2012년 사망했다. 이혼으로 로이 디즈니는 재산 절반 이상을 날리면서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부자 400위 리스트에서도 탈락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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