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링컨도 한때 우울증…약물치료 2~3주면 '약발"

중앙일보

입력

윈스턴 처질,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버지니아 울프, 티퍼 고어(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 등 유명 인사들이 공통으로 앓은 병은?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여성 서너 명 중 한 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남성은 10~20명 중 한 명). 지구촌 1억2000만 명의 인구가 환자이며, 평생 유병률이 10%가 넘는다. 문제는 치료방법이 있는데도 방치해 자살로 이어지는 행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정신건강의 날(4월 4일)을 맞아 '우울증 알리기'에 나섰다.

◆ 편견과 오해가 가장 큰 걸림돌="이 시대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주홍글씨다." 이는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던 티퍼 고어 여사가 자신의 병을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그녀는 우울증 환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정신이상자'로 낙인 찍는 사회 인식을 꼬집었다. 당시 그녀는 "해고당할까봐 두려워 사장에게 '수면클리닉에 입원한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당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입원한다고 말했으면 나는 해고당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긴 병이다. 따라서 당뇨병.고혈압 등 다른 질병처럼 약물 치료가 우선이며 또 치료효과도 좋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약한 사람이 앓는 병,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발생하는 병으로 오해해 치료시기를 놓치고 있다.

용인정신병원 강대엽 과장은 "부부 싸움만 해도 정신과를 방문할 정도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적은 미국에서조차 일반인의 43%가 우울증은 의지가 약해 생긴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의료진 중에서도 우울증이 '성격상 결함' 때문에 초래되는 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

◆ 조기 발견.치료가 중요=우울증을 방치하면 일상생활이 위축되고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마음이 울적하고 세상만사가 덧없고 귀찮을 뿐이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가까이하기를 꺼리고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링컨 대통령의 예를 보자. 성인이 된 후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청년 링컨은 결혼식 날조차 초청한 하객을 뒤로한 채 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무가치함과 절망감.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이 시기에 링컨은 일상에서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 CBS 방송국의 명편집자인 마이크 웰리스는 우울증 치료를 일찍 받아 극복한 경우다. 어느 날부터인지 잠이 잘 안 오고 식욕이 떨어졌던 그는 차츰 절망감에 빠지면서 '자신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다행히 우울증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그는 아내와 함께 곧 병원을 방문, 약물 치료를 시작해 정상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투병 생활을 털어놓으며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전문가의 지시대로 꾸준히 치료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평상시 모든 일에 대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해 생각하라"는 조언도 했다.

◆ 약물 치료 받더라도 당분간은 입원해야=고혈압 환자가 항고혈압제를 복용하듯 우울증도 약물 치료가 해답이다. 치료 효과는 약 복용 후 2~3주가 지나야 나타난다. 따라서 자살 충동을 느낀다 싶을 땐 약효가 제대로 나타날 때까지 입원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 후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약물 복용은 길게 1년 정도 받는 게 안전하다. 치료 후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는 한 약물은 중단할 수 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상들

. 세상만사 재미있는 일이 없다.

. 밥 먹는 일이 귀찮고 식욕도 없다.

. 특별히 다이어트도 하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줄었다.

. 숙면을 취해 본 지가 오래됐다.

. 불행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딱히 발등에 떨어진 불도 없는데 왠지 불안하다.

. 발전하는 이 사회에서 나만 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최근에 무리한 일을 한 게 없는데도 아침부터 피로하다.

. 가정이나 회사에서 나는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 일이나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 괜스레 화가 잘나고 눈물도 많아졌다.

.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자꾸 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