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자랑스런 아들" "아빠 사랑해" 한강사망 의대생 父子카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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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한강공원에 손정민씨를 찾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손정민씨를 찾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아빠·엄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정민이 늙는 거까지 볼게…. 우리 힘내자"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 뒤 숨진 채 발견된 중앙대 의대 본과 1학년생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50)씨는 아들과 생전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를 2일 공개하며 "저는 지켰는데, 이놈이 지키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손현씨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장례 2일째 입관을 했다. 한강 물속에서 혼자 외로웠을 아들을 생각하면 괴롭지만 예쁘게 예쁘게 해줬다"며 "이제 제 아들과의 대화를 남기고자 한다. 제가 받고 싶은 이모티콘('아빠, 사줘!')을 선물한 뒤로 그걸 써주면 너무 고마웠다"고 밝혔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 뒤 숨진 채 발견된 중앙대 의대 본과 1학년생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50)씨가 아들과 생전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억했다. [손씨 블로그 캡처]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 뒤 숨진 채 발견된 중앙대 의대 본과 1학년생 손정민(22)씨의 아버지 손현(50)씨가 아들과 생전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억했다. [손씨 블로그 캡처]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정민씨는 참으로 다정한 아들이었다. '아빠! 아빠! 아빠!' '이욜~ 역시 우리 아빠!' '아빠! 사랑해!!' '우리 아빠 최고!!!!!' 등의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친근함을 표했다.

정민씨가 "할아버지는 저렇게 환하게 웃으실 때가 많고 좋았다ㅠㅠ"며 할아버지를 추억하자, 아버지는 "아빠·엄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정민이 늙는 거까지 볼게…. 우리 힘내자"라며 그를 위로한다.

다른 대화에선 정민씨가 "마지막에 감동파괴"라며 투정을 부리자, 아버지는 "그러게, 아빠는 2만원 안 줘도 놀아줄게"라고 재치 섞인 답변을 한다. 정민씨는 '이야~ 역시 우리 아빠!'란 글과 하트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보내며 "넹"이라고 애교 섞인 답변을 했다.

정민씨 아버지가 "아들아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잘 커 줘서"라고 말하자 정민씨는 "저도 고맙고 사랑합니다"라고 답하고, 아버지가 "고맙다. 아들아 잘 먹고 와"라고 말하자 정민씨는 "더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놀다 올게요"라며 '아빠! 사랑해!!' 이모티콘을 날린다.

손씨 부자가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내용. [손씨 블로그 캡처]

손씨 부자가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내용. [손씨 블로그 캡처]

또 가족 여행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본 정민씨는 아버지에게 "아빠 감사해요. 가끔 옛날 생각 하는데 그래도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여행도 못 가서, 앞으로도 속 안 썩이고 잘 지낼게요"라고 답한다.

아버지가 "아들, 본과 들어가니까 열심히 지내서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넌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할머니가 항암 후유증으로 다시 입원하셔서 아빤 오늘 병원에서 잔다. 내일 저녁에 보자"라고 아들을 응원하자, 정민씨는 '아빠! 사랑해!!' 이모티콘과 함께 "아 지금 병원에 계시는구나, 알겠어요. 잘 있고 내일 봐요"라고 말했다.

손현씨는 아들과의 대화를 추억하며 "전 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웠다"며 "이제 같이 여행은 못 가지만, 이 집에서 영원히 살면서 아들 방을 똑같이 유지하기로 아내와 다짐했다"고 했다.

한편 수사당국이 정민씨의 사인을 규명하고 있지만, 정확한 규명엔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1일 정민씨의 시신을 부검한 뒤 "시신의 부패가 진행돼 육안으로는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다"는 취지의 1차 구두 소견을 냈다. 정민씨 아버지는 시신 뒤통수에 베인 상처와 빰 근육 등이 파열됐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국과수는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채취한 시료를 정밀 검사하고 있으며, 보름 정도 소요된다.

손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뒤, 현장에서 잠들었다 실종됐다. 손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1시 30분까지 어머니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4시 30분쯤 잠에서 깨 귀가했다. A씨는 깨어났을 때 주변에 손씨가 있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SNS·온라인커뮤니티, 공원 인근에서 아들을 찾아 나섰고 경찰도 기동대·한강경찰대와 함께 헬기·드론·수색선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오후 3시 50분쯤 정민씨의 시신은 실종 장소에서 멀지 않은 한강 수중에서 발견됐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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