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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끝내고 밥 먹다가 챔피언 된 김효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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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효주가 우승 트로피를 든 채 셀피를 찍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LPGA]

김효주가 우승 트로피를 든 채 셀피를 찍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LPGA]

김효주(26)가 2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뉴 탄종코스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에서 8언더파로 합계 17언더파를 쳐, 한나 그린(호주)을 1타 차로 제쳤다. 김효주의 LPGA 투어 우승은 2016년 1월 퓨어 실크 바하마 클래식 이후 5년 4개월 만이다. 통산 4승.

HSBC 챔피언십 우승, 통산 4승 #공동 8위로 출발, 마지막 홀 동타 #연장 대비해 식사하다 우승 확정 #5년 4개월 만에 완벽한 부활 신고

김효주는 짙은 색 스포츠 선글라스를 쓴다. 그에게 선글라스는 경기에 집중할 때라는 걸 알리는 스위치와 같다. 선글라스를 끼면 전투 모드, 벗으면 평시 모드다. 김효주는 “평소 덜렁대는데, 공을 칠 때만큼은 집중하자고 생각한다. 눈이 큰 편이어서 멍해 보이고 운동선수 느낌도 덜 하다. 눈동자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니어 시절 친구들은 “선글라스 쓴 효주는 터미네이터 같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기억했다. 그런 김효주가 이날은 복면까지 썼다. 적도 인근 싱가포르의 태양 아래에서 마스크 역할도 하고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도 했다. 아무도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마지막 날,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8위로 출발한 김효주는 전반 9개 홀에서 4타를 줄였다. 11·12번 홀, 14·15번 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기록해 2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그런데 그린이 쫓아왔다. 14번 홀에서 생각지도 않은 샷이글이 나오면서다. 그린은 이번 대회 샷 감각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전날도 샷이글을 했다. 한 대회에서 두 차례나 샷이글을 하는 건 흔치 않다. 그린은 기세를 이어가 16번 홀 버디로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1타 차 선두로 나서면서 그린은 달라졌다. 17번 홀에서 첫 퍼트가 짧아 3퍼트로 보기를 했다. 18번 홀에서는 그린 밖에서 퍼트로 시도했는데, 홀을 5m나 더 지나쳐가면서 역시 보기를 했다. 위기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김효주와 대비 됐다. 김효주는 여유가 있었다. 17번 홀 그린이 보기를 하면서 동타가 됐고, 연장전이 예상됐다. 대개는 퍼트나 샷 연습을 하면서 기다린다. 그런데 김효주는 그냥 식사했고, 그린의 마지막 홀 보기로 우승했다.

김효주는 지난해 코로나19로 국내 투어를 뛰었다가 상금왕에 올랐다. 2승을 거뒀는데, 롯데렌터카 연장전에서는 당시 세계 2위 김세영을 눌렀다.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는 세계 1위 고진영에 8타 차로 우승했다.

10대 시절 천재로 불린 김효주가 다시  살아난 이유 중 하나는 단단해진 몸이다. 꾸준히 근육을 키운 그는 “상·하체 벌크업으로 옷 사이즈가 커졌다. 남자 전 세계 1위 브룩스 켑카 같은 상체를 갖고 싶다. 정확한 자세의 고중량 웨이트 트레이닝이 부상 예방에 큰 도움이 됐고, 만성적인 통증도 많이 좋아졌으며 거리도 늘었다”고 말했다.

김효주는 이번 우승으로 도쿄올림픽 출전권 경쟁에서도 7부 능선을 넘었다. 한국은 이변이 없는 한 여자 골프에 4명이 출전한다. 김효주는 현재 세계 8위로 한국 선수 중 네 번째다. 이번 우승으로 랭킹이 오르면 세계 1~3위 고진영, 박인비, 김세영에 근접한다. 한국 여자 선수의 도쿄올림픽 출전 커트라인은 세계 4위가 될 가능성도 있다.

3라운드 공동 2위 박인비는 합계 15언더파 공동 3위로 끝났다. 유소연이 12언더파 6위, 전인지가 11언더파 7위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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