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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백혈병 5번…"또 일어서야죠"

중앙일보

입력

"준석아, 오늘은 좀 어때?"

3일 오후 서울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소아과 병동. 담당 간호사의 인사에 '병원 고참' 이준석(15)군은 "오늘 더 예쁘네요"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군의 표정만 보면 도무지 14년째 이 병원을 드나든 암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계속된 항암치료로 14년째 변함없는 머리 스타일에 대해서도 이군은 "이젠 아예 깔끔하게 밀고 다닌다"며 웃을 뿐이다.

이군이 처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은 1993년 4월. 그리고 지난해 11월 "이번엔 척수에 백혈병 세포들이 몰려들었다"는 판정을 받고 또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벌써 다섯 번째 발병이다. 이군의 어머니 양현옥(42)씨 눈엔 흘릴 눈물조차 안 남았다.

"생후 27개월 때 감기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간 김에 얼굴이 좀 창백해 보이는 이유를 여쭤봤죠. 의사 선생님이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백혈병이라고 했지만 오진인 줄 알았어요. 서울에서 확진을 받고야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죠."

다행히 골수이식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3년간 입.퇴원을 반복했다. 2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97년 12월, 완치 판정을 받은 그달 백혈병 세포가 다시 발견됐다. 이듬해 5월 이군은 두 살 아래인 남동생으로부터 골수이식을 받았다. 한 해, 두 해, 완치 희망이 무르익을 무렵이던 2001년 다시 고환에서 백혈병이 재발했다.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2003년엔 혈액에서 백혈병 세포가 발견됐다. 골수이식을 한 번 더 하려했으나 오랜 항암치료 탓에 체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 이식수술을 포기했다. 항암치료만으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척수에서 또 재발한 것이다.

"일단 면역주사와 항암제만 투여하고 있어요.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이래요."

아들처럼 양씨도 애써 웃어보였지만 생계 걱정,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놓은 둘째아들 걱정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범택시 운전기사였던 이군의 아버지마저 2년 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군의 치료비 때문에 밤에도 쉬지 못하고 영업을 하다 당한 사고였다. 그럭저럭 버텨 왔던 이군의 집은 급격히 기울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지원금과 교통사고 유자녀 돕기의 학자금 무이자 대출 등을 이용해 생활해온 지 벌써 2년이 돼 간다. 양씨는 수원에서 동네 통장 일을 보거나 일일장터에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이렇게 이군이 입원했을 때는 정말 막막해진다.

"준석이가 씩씩한 것만도 큰 힘이에요. 결석이 잦고 성적도 꼴찌에 가깝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에 적극적이라 선생님들이 많이 예뻐해 주세요."

이군은 올봄 정보산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컴퓨터를 익히고, 틈틈이 학원까지 다니며 정보처리기능사, 워드프로세서 2급, 정보검색사 C급 등 자격증까지 따놓았다. 최근 이모들이 사준 노트북 덕분에 이군은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월에 다른 자격증 시험을 보려 했는데…. 상관없어요. 그저 건강해지기만 하면 좋겠어요." 밝게 웃던 준석이 얼굴이 진지해졌다. 준석이는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다.

*** 또 하나의 고통 '학교 스트레스'

어린 암환자들이 겪기 쉬운 또 하나의 고통은 정서적 불안정이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생활인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투병생활을 시작하거나, 잦은 결석으로 또래들과 학업 수준을 맞추기 힘들면 아이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황태주(전남대 의대 교수) 대한소아혈액종양학 회장은 "투병 기간이 몇 년씩 걸리는 데다 완치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교육 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어린이 전문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학교도 좀더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개 초기 입원치료 후에는 휴학까지 할 필요는 없으므로 가능하면 아이가 학교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친구나 친척.교사 등의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열이 나는 경우 항암치료를 받은 지 2주 안팎일 때는 백혈구 수치가 낮기 때문에 해열제를 주지 말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는 것이 좋다. 또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몸싸움 등 과격하게 부딪치는 운동 정도만 피하게 하면 된다.

'희망'을 자동이체 하세요

본지가 6월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실시하는'Have a Dream 2006' 행사를 통해 소아암 환자에게 '희망'을 나눠줄 수 있다. 새로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독자 한 명마다 본지에서 2000원씩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소아암 치료기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문의는 중앙일보 고객센터(1588-3600), 신청은 ARS 1566-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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