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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며 여성 납치해 살해…'신부 납치' 악습이 부른 참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키르기스스탄에서 강제 결혼을 위해 납치된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돼 현지에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신부 납치'의 악습이 부른 참극에 대대적인 규탄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9일 BBC에 따르면 아이자다 카나트베코바(27)는 지난 5일 남성 3명에 의해 차량으로 납치돼 강제 결혼을 요구받았다. 납치 당시 장면이 담긴 영상이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널리 퍼졌지만, 경찰은 차량을 추적하지 못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로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는 집회가 지난 8일 열렸다. [AFP=연합뉴스]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로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는 집회가 지난 8일 열렸다. [AFP=연합뉴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이틀 뒤인 지난 7일, 여성의 시신이 버려진 차량에서 발견됐다. 납치 공범 한 명과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남성도 숨진 채 발견됐다. 키르기스스탄 국영 TV에 따르면 나머지 한 명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살인 용의자는 카나트베코바 가족들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 남성에게 카나트베코바를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도 했었다고 한다.

BBC는 "현지에선 이른바 '신부 납치'를 오랜 전통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나 학자들은 불과 몇십 년 전부터 유행한 악습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근대적 악습에 대한 국내외 비난이 잇따르자 키르기스스탄은 2013년부터 '신부 납치'를 불법이라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법원에선 여전히 유죄판결이 나는 경우가 드물다. 여성들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친척들이 특정 나잇대가 된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신부 납치가 성행하고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의 결혼 5건 중 1건은 여전히 신부 납치 형태로 이뤄진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로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고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지난 8일 열렸다. [AFP=연합뉴스]

키르기스스탄에서 '신부 납치'로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고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지난 8일 열렸다. [AFP=연합뉴스]

납치된 여성의 희생에 키르기스스탄 국민도 분노하고 있다. 지난 8일 내무부 앞에 모인 시위대는 고질적인 '신부 납치'를 규탄하고 정부 관계자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시위대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아이자다의 죽음에 누가 답할 것인가?", "누가 아직도 살인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항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총리는 "경찰이 조사하는 동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지만, 시위대 측은 "총리부터 물러나라"고 반격했다.

파문이 커지자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자다의 가족뿐 아니라 우리 전체의 비극이자 고통"이라며 "이번 사건이 역사상 마지막 신부 납치 사건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지난 8일 신부 납치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고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키르기스스탄에서 지난 8일 신부 납치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고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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