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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이긴 딸의 클라리넷, 음악 소리가 모녀를 치유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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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가진 조아영(17)양은 8년째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난청으로 잘 듣지 못하고 내성적이던 아영양에게 오랜 시간 단짝이 되어 주었다.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는 클라리넷과 이어온 우정은 ’치유’와 ‘극복’의 원동력이었다. 아영양은 “클라리넷은 아름다운 소리”라며 “더 많은 이들에게 클라리넷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4살 딸 '돌발성 난청'…"세상 무너진 기분"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 '사랑의달팽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 '사랑의달팽이'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19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단체 '사랑의달팽이'에서 아영양과 어머니 주혜랑(48)씨를 만났다. 아영양은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클라리넷 연습을 한다. 주씨는 "정기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면 입술이 부르트고, 엄지손가락이 붓는다"고 했다. 이어 "힘들면 그만두라고 해도 아영이는 '클라리넷이 좋다'고 한다. 연습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아이"라고 덧붙였다.

아영양이 소리를 잃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태어날 때 아영양은 소리를 잘 들었다. 그러다 4살이 되던 해 '돌발성 난청'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아영아”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병원에서 “양쪽 청력이 죽었다”는 진단을 했다. 주씨는 “앞이 캄캄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아영이가 어린이집 가기를 싫어했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아이들은 생각이 신체를 지배하는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 정기공연.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 및 보청기를 지원하여 소리를 찾아주고, 소리를 듣게 된 아이들의 사회적응지원과 대중들의 인식개선교육을 수행하는 사회복지단체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지난 2017년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 정기공연.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 및 보청기를 지원하여 소리를 찾아주고, 소리를 듣게 된 아이들의 사회적응지원과 대중들의 인식개선교육을 수행하는 사회복지단체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아름다운 소리’를 만나다

재활치료 과정에서 클라리넷을 만난 건 모녀에겐 반전의 서막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언어치료 선생님의 추천으로 새로운 악기를 알게 됐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매주 1시간씩 연습하다가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 공연을 보게 됐고, 두 달 뒤 입단했다. "아영이가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과 음악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는 게 주씨의 생각이다.

아영양이 2014년부터 활동 중인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은 세계 최초 청각장애 유소년 연주단이다. 청각 장애 유소년들이 재활 치료와 자신감 향상을 위해 클라리넷을 배우는 데서 시작됐다. 현재 29명이 활동하고 있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관현악단과 협연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아픔, 음악으로 치유"

주씨도 음악으로 치유를 받은 경험이 있다. 201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아영이와 동생을 키우며 힘든 시기를 보내다 이듬해 난타를 접했다. “막혔던 심장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영양의 청각에 자극을 주려고 시작했던 게 지금은 직업이 됐다.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난타를 가르치고 있다.

주씨는 “아이의 장애를 감추기보단 밖으로 드러내야 오히려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내 아이가 왜’라는 생각에 감추고 싶었지만, 딸이 실수할 경우 상대방이 오해할까 봐 장애를 먼저 말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 아영양은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보청기를 보여주며 “귀에 끼면 잘 들린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주씨는 “장애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아이였다”며 “씩씩한 아영이 덕분에 나도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회고했다.

6년 전 학교에서 가족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던 사진이라고 한다. 아영양(오른쪽) 주씨(가운데) 아영양의 동생(왼쪽)이다. 주씨 제공

6년 전 학교에서 가족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던 사진이라고 한다. 아영양(오른쪽) 주씨(가운데) 아영양의 동생(왼쪽)이다. 주씨 제공

"클라리넷 연주 위해 2배 이상 노력"

클라리넷을 8년째 이어온 비결은 '끈기'였다. 주씨는 "비장애인들은 클라리넷 소리가 둔탁한지를 빠르게 인지하지만, 청각장애 친구들은 2배 이상 노력한다"며 "공연을 오러 온 분들이 '장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클라리넷 연주를 하는 데 장애는 크게 상관없다"고 말했다.

왼쪽 귀에 인공와우,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한 아영양에게 클라리넷 소리는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보청기는 귀 앞에 스피커를 틀었을 때와 비슷하게 크게 들리고, 인공와우는 구둣발로 박자 맞추는 소리 등의 잡음도 함께 들려온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그 소리 중에 클라리넷 등 음악 소리를 찾아내 듣고 기억한다. 음이 틀리는 건 오히려 잘 구분한다고 한다. 선생님이 좋았다고 알려준 소리를 기억해 그 방식대로 연습한다.

꿋꿋하게 버티던 모녀에게 위기도 있었다. 수명이 5년 정도인 수백만 원대 보청기가 2016년에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다. 주씨는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모녀의 사연을 접한 '사랑의달팽이'는 LG 유플러스의 재원으로 도움을 줬다. LG유플러스는 사랑이달팽이와 연계해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총 60여명에게 보청기를 지원했다. 사내 게시판에서 칭찬 메시지 등을 동료에게 전하면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이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청각장애인 조아영양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보청기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아영양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꿈꾼다. 클라리넷 연주도 계속할 예정이다. 아영양은 “장애가 있다면 부끄럽게 생각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냈으면 좋겠다"며 "우리 사회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똑같이 대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씨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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