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급 적다” MZ 샐러리맨 ●▅▇█▇▆▆▅▄▇ 드러누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지난 1월 말 SK하이닉스에서 촉발한 보상체계 산정과 임금 인상 논란이 국내 4대 그룹으로 확산하고 있다.

‘드러눕기’ 이모티콘에 담긴 의미 #“월급 너무 적다” 대놓고 불만제기 #판교기업발 임금·처우개선 바람 #삼성전자 등 대기업으로 확산돼 #“사소한 일에도 항의해” 지적도

3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계열사의 저연차 사무·연구직 사원 3000여 명은 기존 노동조합과 다른 제2노조 설립을 논의 중이다. “기본급이 너무 적다”며 불만을 제기하면서다.

기업의 대응도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역대급 임금 인상률과 직급별 초임 인상 카드를 내놓으며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현대차는 성과급 기준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가운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느 봉급쟁이의 부러움을 받는 대기업에서 ‘처우 개선’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렇게 커지는 이유는 뭘까.

삼성 게시판에 등장한 ‘드러눕기’ 돌직구

먼저 MZ세대 샐러리맨의 등장이 주목받는다. MZ세대는 1980~9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 세대와 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태어난 Z세대를 가리키는데, 공정과 평등에 민감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짙다.

지난 18일 ‘임금조정 협의가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전자 사내게시판에는 이른바 ‘드러눕기(●▅▇█▇▆▅▄▇)’ 이모티콘이 등장했다. 이 회사 일부 직원들은 드러눕기 이모티콘을 앞세워 항의성 글을 쏟아냈다. 예컨대 ‘대표이사의 보수는 1위인데 직원은 48위’ 같은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면서 이 이모티콘을 다는 식이었다.

익명을 원한 한 삼성전자 간부는 “게시판이 수백 개의 ‘드러눕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며 “디지털 공간에서 집단시위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드러눕기 이모티콘은 머리 모양의 ‘원’과 몸통·팔·다리를 닮은 ‘사각형’ 10개를 조합해 사람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0년대 초 게임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참여자가 업체나 운영진에게 특정 이슈에 항의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6일 8년 만의 최대치인 평균 7.5% 임금 인상을 발표했지만, 이 회사 게시판엔 30일에도 ‘드러눕기’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사실 ‘더 센 돌직구’는 SK하이닉스에서 나왔다. 자신을 ‘입사 4년차’라고 밝힌 한 직원이 이석희 대표 등에게 이메일을 보내 “성과급 산출방식과 계산법을 밝혀라”고 따져 물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상을 돌려주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의 10%로 한다’는데 합의하고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주요 기업 임금·성과급 합의 내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요 기업 임금·성과급 합의 내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런 흐름은 현대차로 이어졌다. 지난 16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원과 소통을 위해 마련한 ‘타운홀 미팅’의 최대 이슈가 성과급이었다. 정 회장은 이날 “직원들의 박탈감을 알고 있다. 연내에 성과와 보상체계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대차는 기본급 인상을 준비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본급을 늘려 8년차 미만의 저연차 연구직·사무직이 받는 성과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3년차 사원이 받는 월평균 급여 467만원 중 기본급은 150만원가량이다. 기본급을 인상해야 성과급도 늘어나는 구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하지만 회사 측의 대안 제시에 앞서 ‘생산직을 뺀’ 노조 설립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30대로 구성된 3000여 직원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방에 모여 별도의 노조 설립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네·카·엔 1.5배 뛸 때 우리는 제자리걸음”

더욱이 요즘 직장인의 처우 개선과 채용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판교기업들’이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게임·인터넷 업체를 가리킨다. 넥슨은 지난달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 일괄 인상하고, 대졸 초임을 5000만원으로 책정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크래프톤·직방·넷마블 등으로 임금 인상 도미노가 이어졌다. 여기에다 네이버와 카카오·엔씨소프트는 최근 나란히 ‘연봉 1억 시대’를 열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 11만 명은 평균 1억2700만원을 받았다.〈도표 참조〉 지난 2015년엔 1억1700만원이었는데 연평균 2%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네이버의 직원 보수는 6801만원에서 1억247만원으로 1.5배가량으로 늘었다. 엔씨소프트의 직원 4200여 명은 지난해 평균 1억550만원을 받았다. 근속기간은 5.5년이었다.

주요 기업 직원 보수 살펴보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요 기업 직원 보수 살펴보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삼성전자의 한 초급 간부는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12.4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들에게 추월당한 것”이라며 “실적은 훨씬 좋은데 처우는 이에 못 미치니 박탈감을 오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MZ사원 상대하다 눈물…가장 불편한 고객”

MZ세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회사는 난처해진다. 익명을 요청한 4대 그룹 인사팀 간부는 “사내에서 ‘가장 불편한 고객’이 MZ세대”라며 “사소한 사안에도 지나치게 불만 제기를 한다. 심지어 20년차 노무담당 간부가 신입사원을 면담하다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50대 간부는 “이들이 외치는 공정이 ‘일단 내 주머니부터 채우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대기업 성과급 논란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기업 성과급 논란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업 평가와 운영 기준이 필요해졌다는 신호”라고 진단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MZ세대는 한두 자녀로 태어나 가정·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라는 독려를 받고 자란 세대”라며 “이들과의 소통방식을 익히고 조직 운영을 투명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들은 장기근속이나 회사의 미래에 관심이 적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기업 성과를 높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김영민·권유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