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군시절 성경험 많아 무료 교육 자청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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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을 가면 많은 군인이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요. '무슨 얘길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는 태도죠. 하지만 강의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허리가 곧추세워지고 눈빛이 진지해져요. "

지난 2년간 전국의 군인 2만여명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해 온 배정원(44) 행복한 성문화센터 소장. 그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군인 대상 성교육 전문가다. 멀리는 백령도에서 강원도 산골의 군 부대까지, 서울~부산을 일백번도 더 오가는 거리를 달려가 '막사 성교육'을 해왔다.

"적지 않은 남성이 입대를 앞두고 또는 군대 휴가 중에 성행위 경험을 한다고 해요. 군인 성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외부와 차단된 채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 이곳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어떤 내용일까?

"남녀의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를 얘기해보라고 하면 민망해 하며 '거시기''물건''연장' 또는 '밑''홍합' 등을 말합니다. 성을 일컫는 표준어가 비어나 욕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지요."

성에 대한 용어로부터 '성은 속된 것' 또는 '성은 숨겨야 하는 것'이란 기존의 통념을 이끌어 내는 배 소장은 "성이란 '인격'이며 '문화'"란 점을 강조한다.

"남자들은 성감을 높이는 방법 등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여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지요."

성관계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생각도 확연히 다르다. 부부싸움이 끝나면 남편은 화해의 제스처로 성관계를 하려고 한다. 말에 서툰 남성이 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 하지만 아내는 먼저 말로 문제를 푼 뒤에야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게 배 소장이 오랜 상담을 통해 터득한 결론이다. 이처럼 남녀의 성 생리와 성 심리의 차이를 설명하고 피임법 등 정보를 알려주면 강의가 끝날때 쯤엔 100여장의 질문지가 쏟아진다고.

그가 군인 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년간에 걸친 성교육과 성상담을 통해서다.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상담부장, 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대표 등으로 활동하면서 온.오프라인에서 20여만명에게 성교육과 성상담을 해왔다. 대학졸업 후 연세의료원 홍보과에서 근무하며 인체를 알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

지난해엔 '유쾌한 남자 상쾌한 여자'(가교출판)란 성교육 책을 발간해 주목을 받았고 올 3월 행복한 성문화센터(www.baejw.com)를 열었다.

"여성에게 방어적인 성교육을 하기가 십상이에요. 하지만 남자들의 성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균형 잡힌 성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배 소장은 남성의 성의 사회화가 형성되는 군대를 교육 대상으로 잡고 2년 전 국방부를 찾아가 무료 성교육을 자청했다.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겨우 차비 정도의 강의료를 받고 뛰다보니 '밑지는 장사'만 하고 있다고 웃음짓는 그는 "국방부가 최근 군인 성교육 강사 양성 교육을 실시할 만큼 필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기뻐했다.

"'군인에 대해 뭘 아느냐. 여자가 하기엔 거친 일이다'는 말도 여러 차례 들었다"는 배 소장은 "아직까지는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아 강의할 때마다 항상 긴장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걱정이 앞서 말리는 남편도 언젠가는 자신을 격려해 줄 것"이라며 일에 대한 집념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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