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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식 균형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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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1월 31일 베트남 공산당 13차 당 대회가 폐막했다. 76세 응우옌푸쫑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호찌민 이래 관례를 깨고 총서기를 3연임 했다. 중국 공산당은 내년 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총서기 3연임을 결정한다. 관례를 깬 3연임 총서기의 탄생은 시 주석에게 희소식이다. 당내 연임 반대론자의 논거가 하나 사라져서다.

시 주석은 2월 8일 응우옌 주석과 기쁘게 통화했다. 두 나라 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인민보는 이튿날 1면에 각각 통화 내용을 실었다. 공산당식 전문용어 속에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중국은 뜨겁고 베트남은 차가웠다. 두 나라는 1979년 중국이 ‘자위전’, 베트남은 ‘북부변경 사건’으로 부르는 전쟁을 치렀다. 파라셀 제도(시사군도) 해상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트남은 전쟁을 치렀던 미국을 지렛대 삼아 중국을 상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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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주석은 우선 라오스·캄보디아 정상과 통화했다. 3연임 직후에도 이웃을 우선 챙겼다. 시 주석과 통화한 당일 메드베데프 통합러시아당 주석과도 전화했다. 중국과 러시아 어디에도 기울지 않았다. 인민일보는 시 주석이 양국 관계를 “전략적 의의를 지닌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응우옌 주석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라며 시 주석보다 한 단계 낮췄다. 베트남-러시아 외교 관계와 동급이다. 중국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시 주석은 “해상 갈등을 원만하게 관리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분쟁을 밝히고, 베트남이 미국과 거리를 둘 것은 압박했다. 반면 응우옌 주석이 중국과 갈등을 언급한 발언은 인민일보·인민보 어느 쪽에도 없었다. 인민보는 “수교 71년 동안 양국 관계는 비록 기복이 있었지만, 역사와 실천은 우호 협력이 여전히 양당·양국 관계의 주류임을 보여 준다”는 뼈있는 말을 기록했다. 인민일보는 이 발언을 뺐다. “중국과 전통적 우호 관계를 발전·강화하는 것은 베트남 공산당과 국가의 최우선 방향”이라는 발언만 보도했다. 물론 인민보는 기록하지 않았다.

미국도 도왔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국보다 하루 앞서 팜빈민 베트남 외무장관과 통화했다. 규칙에 기반을 둔 남중국해 수호를 말했다. 베트남 인민보는 블링컨이 13차 당 대회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남중국해는 전하지 않았다. 중국을 고려한 선의의 표시다.

“외교에 사소한 일은 없다(外交無小事).” 저우언라이 중국 초대 외교부장의 지침이다. 한국에도 중국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베트남은 잘 다듬어진 답안을 보여줬다.

신경진 베이징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