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골드워터와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베트남전 물줄기를 바꾼 통킹만 사건이 일어난 1964년, 그해 11월 미국 대선은 보수에 치욕적 패배를 안겼다. 저서 『보수주의자의 양심』으로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배리 골드워터 후보가 유권자 득표율 38.5%로, 61.1%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전체 50개 주 중 6곳만 겨우 건졌다.

산산 조각 난 보수의 미래를 위해 주요 인사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 산물이 1974년 미국 최대 보수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 CPAC(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의 시작이다. 기조 연설을 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은 6년 뒤 대선에서 압승했다. 빼앗긴 주는 6곳, 골드워터의 대패를 그대로 갚아줬다.

지난달 28일 막 내린 올해 CPAC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피날레 연설로 명실상부 보수의 터전이 된 CPAC의 대미를 장식했다. 퇴임 39일 만의 첫 공개 연설에서 바이든 정부 한 달을 “근대 역사상 가장 형편없었다”며 흠씬 두들겼다. 공식 선언만 안 했을 뿐 2024년 대선을 노린 무력시위이자 몸풀기나 다름없었다.

글로벌 아이 3/2

글로벌 아이 3/2

그 직전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지지자 10명 가운데 6명(59%)이 그의 2024년 대선 출마를 “원한다”고 답했다(USA투데이-서퍽대). “원하지 않는다”(29%)는 응답보다 배 많았다. 트럼프 신당이 만들어지면 “따라나서겠다”는 추종자도 거의 절반(46%)에 달했다. 대선 패배와 탄핵 심판에도 지지층이 공고하다는 방증이다.

측근들은 트럼프의 후광을 업고 줄줄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슬로베니아 대사를 지내고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도전에 나선 린다 블랜처드는 트럼프의 대선 구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그대로 베껴 전면에 내세웠다. 당내 대표적 반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결심만 하면 2024년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화당 내부 기류는 복잡하다. 당내 하원 서열 1위인 케빈 메카시 원내대표와 3위 리즈 체니 의원총회 의장이 트럼프 역할론을 놓고 공개 충돌하기도 했다. 메카시가 CPAC 연설에 찬성하자 체니가 불가론으로 맞받았다. 트럼프와의 결별을 시사했던 상원 서열 1위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도 좌불안석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는 극우적 발언으로 화를 자초한 골드워터의 뒤를 트럼프가 따를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는 5년 전 여지 없이 무너졌다. 재출마 자격을 꺾으려던 탄핵 추진도 되레 몸값만 올려줬다는 원성이 비등하다. 골드워터는 4년 뒤 여봐란듯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묘한 반전의 연속이다.

임종주 워싱턴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