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암행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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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암행어사 출도야!”

우렁찬 함성과 함께 마패를 꺼내 들고 탐관오리를 바들바들 떨게 하던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민심 사찰을 위해 만든 비정규 관직이다. 최근 종영한 KBS 사극 ‘암행어사:조선비밀수사단’에서는 홍문관 부수찬을 지내던 이겸이 암행어사로 파견되는데, 대부분 암행어사는 이렇게 기존 관료 중에서 선발돼 특정 지역에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암행어사

암행어사

대중에 암행어사로 유명한 인물은 조선 영조 때 박문수다.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시기는 1년(1727~1728)에 불과했지만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영남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관련 설화가 남았을 정도다. 일부 지역에선 그를 위해 서낭당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그는 영조 때 ‘야당’인 소론에 속했고, 강직한 성격에 할 말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노론계 관료들과 갈등도 잦았다. 한번은 그에 대해 “말소리가 크고 국왕을 볼 때 고개를 쳐들고 바라본다”며 엄하게 추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이에 박문수는 왕의 면전에서 “예전엔 대신들은 꿇어앉고 재신(宰臣)은 반쯤 부복(俯伏)했는데, 근래에는 환국이 잦았기 때문에 조신(朝臣)들이 두려워하여 모두 땅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군신 관계는 부자 관계와 같은데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주변에선 무엄하다고 펄펄 뛰었지만 영조도 아부하지 않는 박문수를 감쌌고, 훗날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영성(박문수)이며, 영성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고 말했다. 그 임금에 그 신하였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