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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가 의사에게 책임 떠넘기며 백신 불신 키워서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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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레바논 의료진이 지난 14일 화이자 백신을 들고 있다. 미국·유럽 선진국은 물론 레바논 등 세계 각국은 이미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해 접종에 들어갔지만 한국은 24일에야 유효성 논란이 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처음 공급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레바논 의료진이 지난 14일 화이자 백신을 들고 있다. 미국·유럽 선진국은 물론 레바논 등 세계 각국은 이미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해 접종에 들어갔지만 한국은 24일에야 유효성 논란이 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처음 공급받는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정책은 시종일관 미덥지 않다. 백신 확보전에 뒤져 다른 나라보다 한참 늦은 이달 말(26일)에야 접종을 시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불투명한 정보 공개에다 의료진에 책임 떠넘기기로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러다간 백신 거부 현상이 빚어져 접종률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오늘 코로나 백신 접종 세부 계획 발표 #명확한 가이드라인 세워 접종률 높여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오늘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한 세부 시행계획을 발표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줄곧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만 65세 이상 접종 허용 여부다. 개도국을 위한 국제 백신 프로그램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6만 명분의 화이자 백신이 곧 들어온다지만, 현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도입 시기가 확정된 백신은 24일부터 닷새간 순차적으로 공급되는 75만 명분의 아스트라제네카가 유일하다. 방역 당국은 당초 이 백신을 요양시설에 머무르는 노인과 종사자부터 맞게 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임상 탓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가 노인 접종을 금지하면서 국내에서도 노인 접종에 대한 유효성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새로운 백신 도입을 앞두고 안전성 검증은 꼭 필요한 절차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10일 아스트라제네카의 국내 사용을 승인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접종하는 의사가 접종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유익성을 충분히 따져 결정하라”며 접종 대상 선택은 물론 예상 가능한 백신 부작용 등 안전성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실상 현장의 의료진에 떠넘겼다. 수차례에 걸친 정부 전문가 회의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방역 당국조차 명확한 지침을 내놓지 못해 놓고, 접종을 담당하는 의사 개개인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떠넘기는 건 무능을 넘어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행태다. 백신은 일정 수준의 접종률에 도달해야 집단면역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에 어느 정부든 모든 백신 부작용은 정부가 책임지고 속도전에 돌입하는 게 상식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불신 해소가 급선무다. 65세 이상 접종을 허용한다면 국민에게 그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당·정·청 주요 인사부터 접종해 불안을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당초 발표한 접종 순위를 바꿔 65세 이상 접종을 뒤로 미룬다면 접종 거부나 접종 대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민 설득과 면밀한 접종 계획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자들이 책임질 일을 회피할 궁리부터 하면 백신 접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백신은 물량 확보와 접종 속도 못지않게 방역 당국에 대한 국민적 신뢰 여부가 관건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