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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학교·스포츠 폭력은 반인권 범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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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맞으면서 자란 운동 선수가 폭력적 지도자가 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4등'의 한 장면. [영화 '4등' 캡처]

맞으면서 자란 운동 선수가 폭력적 지도자가 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4등'의 한 장면. [영화 '4등' 캡처]

배구 선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소속 팀(흥국생명) 경기에 뛸 수 없게 됐다. 국가대표 선발에서도 제외됐다. 언제 코트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두 선수가 중학생 때 배구부 동료에게 폭력을 가한 데 따른 일이다. 남자 배구 선수 송명근·심경섭도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두 선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다른 스포츠 스타도 과거 행적으로 인해 선수 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앞서 아이돌 가수, 가요 경연대회 출연자 등도 청소년기에 주변 학생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와야만 했다.

이 일련의 사태는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가 이들에게 ‘신문고’ 역할을 했다. 학교와 운동부에서의 폭력은 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관용적 사고가 더는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도 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미미하고 비난의 목소리가 비등한 현실이 변화를 상징한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의 폭력은 켜켜이 쌓인 폐단, 그야말로 적폐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감독과 코치가 선수들을 때렸고, 선배가 후배를 괴롭혔다. 유망 선수들은 위세를 부리며 동료를 학대했다. 맞고 자란 선수들은 자신이 선배·지도자가 됐을 때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몽둥이를 들었다. 그렇게 폭력의 대물림이 지속됐다.

인권 의식이 향상되며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피해자는 곳곳에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 선수 5만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4.7%가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조사의 특성을 참작하면 실제 피해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선수도 많을 것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조직에서 ‘군기(軍紀·군의 기강) 잡는다’는 말로 괴롭힘을 미화했다. 요즘엔 군에서도 폭행과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는데 유독 운동부에 한 세대 전 군대 문화가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학교 스포츠가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것은 반(反)인권 범죄라는 사실을 교사와 스포츠 지도자들이 먼저 깨닫고,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스포츠 조직 폭력은 관행도, 구습도 아니다. 다른 이의 신체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악행일 뿐이며 스포츠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