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지하수 오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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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전국에서 550만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지하수를 상수원수로 이용하고 있다. 지하수가 생명수인 셈이다. 하지만 전국 곳곳의 지하수가 오염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하수 오염으로 건강 피해가 우려되는 곳이 적잖다. [편집자]

"이곳의 지하수는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이 고농도로 함유돼 있으니 식수로 이용하지 마시기 바라며, 부득이 사용할 경우에는 적정한 제거처리를 거쳐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의 한 주유소. 마당 한편 담벼락 아래 수도꼭지에는 붉은 글씨로 된 경고판이 매달려 있다.

2003년 1월 국립환경연구원은 이곳 지하수에 방사성 물질이자 중금속인 우라늄 농도가 51.1ppb로 미국 기준치(30ppb)를 크게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1999년 대전지역의 먹는샘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환경부가 4년에 걸쳐 전국의 지하수 수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주유소 관리인은 "지금은 지하수를 화장실에서만 사용한다. 수도관을 끌어오는 데 1000만원 정도 들어가는 바람에 포기하고 식수는 생수를 사다 마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편 마을로 가보면 지하수가 아직도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신모(80.여.부발읍 아미1리)씨는 "마을까지는 수도관이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지하수를 마시는 집이 우리 집을 포함해 몇 집 있다. 우리는 수질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는 수질검사를 한다 해도 우라늄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수질검사 항목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라늄이 고농도로 들어 있는 지하수를 장기간 마셔 체내에 축적될 경우 방사선으로 인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 또 중금속 성분은 콩팥에 손상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시 반대편 외곽에 위치한 또 다른 주유소의 지하수에서는 이보다 훨씬 높은 322ppb가 검출됐으나 경고문조차 없다. 주유소 직원은 "경고판이 떨어져 다른 곳에 올려 뒀는데 바람에 날아간 모양"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주유소를 중심으로 주변 200여가구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또 일부는 식수로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나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이천시 건설과 담당자는 "지난해 정부 발표로 이천시 지역 전체의 우라늄 오염 우려가 제기됐지만 아직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환경부도 해당 시설에만 경고문을 붙이도록 한 게 전부다. 주변 지역에 대한 정밀조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방사성 물질을 수질기준에 포함시킬 계획도 아직 없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김예신 박사는 "방사성 물질 함유량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게 보통"이라며 "4년간 대규모 조사를 하고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국민건강을 도외시한 것이고 조사예산만 낭비한 꼴"이라고 말했다.

발암물질로 인한 지하수 오염도 심각한 수준이지만 방치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울산시 북구 농소정수장에서 상수원수로 사용하는 지하수에서 세탁소 드라이클리닝 등에 사용되는 물질이자 발암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이 검출됐다. 원래는 2001년 7월과 12월 PCE가 검출됐으나 '불검출'로 환경부에 보고한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된 것이다.

또 시민환경연구소 수질연구팀이 환경부의 2000~2002년 전국 지하수 수질측정망 측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60개 읍.면.동 지역이 트리클로로에틸린(TCE)과 PCE 기준을 1회 이상 초과했다.

특히 서울.부산.대구.인천.창원 등의 공단과 도시 주거지역의 지하수가 발암물질로 광범위하게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이나 부산 사상구 학장동, 경남 창원시 팔용동 등에서는 TCE나 PCE가 기준치의 최고 140배까지 검출되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내동 등 일부 지점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TCE로 오염된 지하수를 주민들이 마셨던 것으로 드러나 환경부가 식수 이용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4년 동안 오염지하수를 정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임종현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은 "올해 경기도 안산지역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전국 각 공단의 토양지하수 환경을 정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지하수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직접 수질검사를 해서 먹는 물 이용 여부를 판단해야 하지만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비용 때문에 지하수 수질검사를 기피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초.중.고교 가운데 20% 정도는 여전히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이 가운데는 먹는 물 기준을 초과한 경우도 빈번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군부대에서 먹는 물로 이용하는 지하수도 45%가 수질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지적됐다.

경남 창녕의 '괴질' 논란이나 정수기 물 오염으로 인한 여고생 집단 식중독 등 먹는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사례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수질분야 연구팀(http://ecohealth.or.kr)=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 김예신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박사, 황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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