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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언론도 징벌적 손배제"···文저서 속 개혁과 반대로 간다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4개월여 앞둔 2017년 1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전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4개월여 앞둔 2017년 1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전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에 일부 언론 규제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여야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언론 보도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국민의힘이 “언론 재갈 물리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 단장인 노웅래 최고위원은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허위뉴스·가짜뉴스의 뿌리를 뽑겠다”며 “언론도 허위·왜곡 정보를 악의적·고의적으로 보도해서 피해를 입힌다면 마땅히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최고위원회의 때만 해도 민주당은 언론 보도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소극적이었지만 닷새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당초 민주당이 2월 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했던 ‘미디어 6법’에는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빠져 있었다. 윤영찬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언론사가 아닌 개인 유튜브나 온라인 게시물을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게 골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노 최고위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6개 법안 중 언론을 대상으로 한 법안은 없다”고 했었다.

민주당,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추진 

그동안 민주당 인사들은 “가짜뉴스의 확산이 인터넷 포털과 개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정보가 유통되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김종민 최고위원)는 취지로 ‘미디어 6법’ 추진 배경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8일 언론TF 관계자는 “3일 최고위원회 이후 지지자들로부터 수천통의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며  “입장 변화가 있는 게 맞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 언론TF는 정보통신망법 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에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 의원은 MBC 기자 출신이다. 연합뉴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 의원은 MBC 기자 출신이다. 연합뉴스

언론TF가 9일 회의를 열어 방법론을 확정하면 이는 곧 민주당의 당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일단 법안이 정해지면 상임위 논의를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언론TF에 언론개혁 관련 정책 방향을 맡겨 놓은 만큼 TF의 결론이 당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2월 국회 처리 가능에 대해선 “당장에 처리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언론 장악 시도 그만두라” 

야권에선 민주당의 법안 처리 방침을 “언론 탄압”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비대위 회의에서 “우리 정치사를 보면 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며 “민주당은 작금의 언론 장악 시도를 당장 그만두기를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최형두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정정보도나 악의적 보도에 대한 구제는 현재도 구제할 방법과 법적인 제재가 있다”며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한데, 여기에 또 다시 형벌 성격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여당 내부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말로는 사회통합을 던져 놓고 실제로는 더 편을 가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법관 탄핵에 대한 중도층의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불가피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곧바로 도입하는 건 자살골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4개월여 앞둔 2017년 1월 작가 문형렬씨와 함께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년간 이 책에 포함된 주요 내용은 상당 부분 실현됐다. 대담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껏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죽 써 왔는데 지금 필요한 건 그걸 뛰어넘는 것”이라며 “(내가)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主流)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했다. 실제 행정부와 입법부뿐 아니라 사법부의 주류는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일컬어지는 인사들로 바뀌었다.

文의 『대한민국이 묻는다』에 언론 개혁 소개

특히, 이 책에서 일종의 공약 소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네 번째 장(章) ‘약속: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약속’에 소개된 내용은 문재인 정부의 청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다. ▶사드 배치와 북한 핵개발 해법 ▶미국과 북한 사이, 남북문제 해결하기 ▶검찰과 경찰 개혁의 답은 지방분권 ▶또 하나의 불안, 지진과 원자력 발전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국민 경제성장 등 거의 순서까지 일치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차곡차곡 현실화됐다.

그런 ‘약속’ 장이 거의 끝날 때쯤 나오는 내용이 ‘언론 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공영방송은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줘야 한다”며 “나머지 민간 언론에 대해서도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언론은 언론의 사명인 권력 견제와 감시에 충실해야 하고,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공정하게 보장해야 한다”며 “(종합편성채널 재허가 등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는 거니까 스스로 자율적인 개혁을 하도록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했으니 언론 개혁을 통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하되 언론 스스로 개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에 쓰여진대로 민주당은 최근 언론 개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文은 ‘자율 개혁’ 강조했지만 민주당이 주도 

문제는 순서는 일치하지만 방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부분은 ‘스스로 자율적인 개혁’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언론 개혁을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인 단체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핀셋으로 찝어내듯이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을 골라내야 하는데 지금의 방식은 모든 언론을 위축시킨다”(김동훈 기자협회장)는 이유다.

허진·송승환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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