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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과 중국 압박” 백악관, 한ㆍ미 정상통화 발표선 中 언급도 안해

중앙일보

입력

코드를 맞췄는데, 오히려 상대방의 발표는 미적지근했다. 4일 이뤄진 한ㆍ미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양국이 낸 보도자료에서 드러난 온도 차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통화는 이날 오전 8시 25분부터 57분까지 32분 동안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통화 직후 트윗으로 “나와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ㆍ미 동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한ㆍ미 동맹을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을 넘어 민주주의ㆍ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치동맹' 강조로 '대중 연합' 호응

문 대통령이 직접 가치동맹을 강조하며 ‘업그레이드’라고 표현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압박정책에 호응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ㆍ우방국들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27일 한ㆍ미 외교장관 통화 뒤 미국 측 보도자료에만 들어가 논란을 불렀던 ‘한ㆍ미ㆍ일 협력’이라는 표현이 이번 청와대 발표에는 포함됐다. 강 대변인은 “양 정상은 한ㆍ일관계 개선과 한ㆍ미ㆍ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소개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업그레이드라는 표현은 한ㆍ미 동맹을 중심으로 남북관계와 대중 정책을 풀어가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지금 미국이 홍콩이나 대만, 위구르 등에 대해 문제 삼는 민주주의 가치는 중국으로선 주권과 연결되는 민감한 부분이라 정부가 향후 가치동맹을 어디까지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간 통화에 대한 4일(현지시간) 백악관 보도자료. 백악관 웹사이트 캡처

한미 정상간 통화에 대한 4일(현지시간) 백악관 보도자료. 백악관 웹사이트 캡처

그런데 정작 백악관 보도자료에서 이처럼 대중 견제를 염두에 둔 표현이나 개념이 대부분 빠졌다. 대표적인 게 ‘인도태평양’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태평양의 동맹국을 규합해 중국을 차단하려 목표로 만든 전략인데, ‘트럼프 지우기’에 여념이 없는 바이든 행정부도 이 개념만은 계속 쓰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날 한ㆍ미 정상 간 통화 관련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ㆍ미 동맹을 인도태평양이 아닌 “동북아시아의 핵심축(linchpin)”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 간 통화 보도자료와 비교된다. 당시 백악관은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주춧돌(cornerstone)로써 미ㆍ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양 정상은 중국과 북한 등 역내 안보 이슈도 논의했다”고 했다. 한ㆍ미 정상 통화 보도자료에는 ‘중국’이란 단어도 나오지 않았다.

한·미=동북아 동맹, 미·일=태평양 동맹, 미·호=글로벌 동맹?

문 대통령과 같은날 미국·호주 정상 간 통화도 이뤄졌는데, 백악관은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ㆍ호 동맹을 “인도태평양과 세계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닻(anchor)”으로서 중시했다고 밝혔다. 또 “양 지도자는 중국을 어떻게 할지 등 글로벌 및 역내 도전을 다루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지난해 11월 아라비아해에서 진행된 쿼드 연합훈련.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군이 참여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아라비아해에서 진행된 쿼드 연합훈련.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군이 참여했다. AP=연합뉴스

한ㆍ미동맹은 ‘동북아의 핵심축’, 미ㆍ일동맹은 ‘인도태평양의 주춧돌’, 미ㆍ호동맹은 ‘세계의 닻’으로 표현한 셈이다. 중국 견제 등 글로벌 전략에서 어떤 동맹을 더 중시할지 은연중 드러낸 셈인데, 미ㆍ중 간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동맹에 대한 기대치 차이가 반영된 표현으로 보인다”며 “한국이 쿼드(미ㆍ일ㆍ호ㆍ인도) 안보 협의체 등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참여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한ㆍ미동맹을 인도태평양의 핵심축으로 부르긴 어려운 게 현실이고, 실질적으로 협력이 이뤄지는 동북아 지역에서 동맹의 역할을 언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간 줄타기 한국에 실망감?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외교역량을 결집해 글로벌 난제를 풀려는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에 차별을 두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들어가면 태도가 불명확한 한국과 달리 적극 참여하는 일본과 호주를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 회의.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 회의. EPA=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 간 통화에서는 ‘확장억제’(핵우산)에 대한 미국의 공약도 명시됐지만, 한ㆍ미 정상 통화 보도자료에는 상용구처럼 들어가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철통 같은 방위 공약’ 같은 표현도 없었다. 아예 ‘안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강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했다”며 “양 정상은 조속히 포괄적 대북 전략을 마련할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양 지도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긴밀히 조율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총리와 통화할 때는 “두 지도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비핵화’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상 간 통화 이후에는 양측이 조율하지 않고 각각 발표했다. 백악관 자료도 맥락은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지혜ㆍ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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