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자연의학 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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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중순 독일 중부에 있는 에센대학병원 통합의학센터. 3주 전 제 발로 걷지 못해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입원했던 브리기테 뮐러(65)할머니는 "이제 걸을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퇴행성 무릎관절염을 18년이나 앓았던 할머니는 자연요법 치료를 받고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났다. 놀랍게도 네 마리의 거머리를 무릎 부위에 풀어놓고, 뉴질랜드산 초록색 홍합 추출물을 3주간 매일 먹은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주치의 게옥 슈판 박사는 "거머리의 특수효소가 할머니의 몸에 들어가 혈액순환을 좋게 했고, 여기에 홍합 추출물이 항염(抗炎)효과를 낸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촌에 자연의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세기에 급성장한 현대의학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자연의학이 대체의학.보완의학.통합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독일엔 자연요법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2만여명이나 되며, 독일 국민은 지난해 자연의학의 하나인 동종(同種)요법 치료에 30억유로(약 4조원)의 의료비를 지불했다. 영국도 1999년 5백만명의 환자들이 23억파운드(약 6조원)를 자연요법에 쏟아부었다.

미국의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국립보건원(NIH)은 92년 산하에 대체의학연구원(OAM)을 설립했다가 98년 새 법을 제정,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이는 당시 전체 환자의 절반이 자연요법을 찾았고, 이를 위한 치료비로 연 2백70억달러(약 40조원)를 지출하고 있는 의료소비 행태를 반영한 것이다.

자연의학을 연구하고, 의대 교과과정에 수용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현재 미국의 수많은 의대 중 상당수인 97개 대학이 자연의학을 선택 또는 필수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다. 또 NIH는 지난해 하버드대.듀크대.UCLA.존스 홉킨스 병원.MD 앤더슨 암센터 등 유명 병원 통합의학센터에 1억3천만달러(약 1천6백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렇게 자연의학이 새로운 조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의료의 패러다임이 치료 개념에서 건강 유지.증진 개념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가천의대 통합의학센터 이성재 교수는 "현대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인구 고령화 추세와 만성병을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자연의학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임상에 활용하는 노력은 미흡하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현대의학에 사용되는 의약품 비용이 연 5조원인 데 비해 보약.기능성 건강식품.영양제.보신식품 등에 쓴 돈이 20조원에 달한다"며 "이를 과학화.국제화하지 않으면 현재의 제약산업처럼 자연의학도 수입에 의존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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